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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무시한 용접작업 중 불꽃"…이천 물류창고 화재, 결국 인재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38명이 숨진 경기도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의 원인은 인재(人災)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화재를 수사 중인 경찰은 사고 발생 48일 만인 15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화재가 안전조치를 무시하고 용접작업을 하던 도중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천 화재 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이천경찰서에서 브리핑을 열고 중간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안전조치 없이 용접 작업”  

수사를 지휘한 반기수 본부장은 “공사장 지하 2층에서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용접 작업이 이뤄지던 가운데 발생한 불티가 가연성 소재인 건물 천장의 벽면 우레탄폼에 튀어 불길이 치솟은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화재 당일인 지난 4월 29일 오전 8시부터 지하 2층에서 진행된 산소용접 작업 중 불꽃이 천장 우레탄 폼에 옮겨붙어 건물 전체로 퍼졌다는 게 경찰 분석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근로자는 용접작업 시 방화포와 불꽃·불티 비산방지 덮개 설치 등의 조처를 해야 하고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이천 냉동·냉장 물류창고 공사현장.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천 냉동·냉장 물류창고 공사현장.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경찰은 사상자 다수가 발생한 원인으로 공사 기간을 줄이고자 공정 전반에서 안전관리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을 지목했다.

"공기 단축하려 동시에 많은 근로자 투입" 

경찰에 따르면 이천 물류창고 현장에서는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동시에 많은 근로자를 투입해 병행작업이 이뤄졌다. 반 본부장은 “공기를 단축하려고 화재 당일은 평상시보다 약 2배 많은 근로자 67명이 투입돼 지하 2층에서 옥상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많은 종류의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지상 2층의 조리실 내부에서 주방 덕트 및 소방배관 작업을 하던 12명은 모두 숨졌다. 또 5월 초부터 진행될 예정이었던 엘리베이터 작업은 변경된 일정을 맞추려고 화재 전날인 4월 28일부터 근로자 3명을 공사에 투입한 결과 이들 모두가 사망했다.

또 경찰은 ▶화재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수칙 미준수 ▶안전을 도외시한 설계변경 및 시공 ▶화재 현장의 구조적 특성 등이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동일한 장소에서 화재 및 폭발의 위험이 있는 작업인 우레탄 폼 발포작업과 용접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고, 비상유도등 등 임시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작업이 진행됐다. 특히 사이렌과 같은 비상 경보장치가 없어 지하 2층 이외 층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은 화재를 조기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시 옥상에서 작업 중이던 생존자 3명이 바깥으로 퍼지는 연기를 보고 화재를 빨리 인식해 탈출한 것과는 대비되는 지점이다.
설계와 달리 지하 2층 방화문을 벽돌로 폐쇄하는 등 대피로가 막혀 피해가 더 커지기도 했다. 실제로 지하 2층에 있던 근로자 4명은 폐쇄된 방화문을 뚫고 대피하려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임직원 5명과 시공사인 건우 임직원 9명, 감리단 6명, 협력업체 4명 등 24명을 입건했다. 그 가운데 책임이 무거운 9명(발주처 1명, 시공사 3명, 감리단 2명, 협력업체 3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화재 발생과 피해 확산의 근본적 원인이 된 공기단축과 관련한 중요 책임자들에 대해 집중 수사하는 한편 공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여죄 등에 대하여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며 “재하도급, 건축자재 관련 부정 거래, 형식적인 감리제도 등 기존의 잘못된 공사 관행에 대한 법·제도 개선대책 마련 등을 위한 수사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는 지난 4월 29일 오후 1시 32분쯤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이 불로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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