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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혁백의 퍼스펙티브

격해지는 미·중 경쟁, 중국 의존 줄이고 교역 분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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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질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며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글로벌 리더십이 실종됐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발한 국가라고 비난하는 마이크 폼 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사진)과 미국이 끊임없는 거짓말로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뒤집어씌운다고 반박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AP·신화=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며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글로벌 리더십이 실종됐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발한 국가라고 비난하는 마이크 폼 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사진)과 미국이 끊임없는 거짓말로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뒤집어씌운다고 반박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AP·신화=연합뉴스]

코로나19는 세계 질서의 대전환을 초래한 3대 팬데믹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킨 흑사병은 봉건제 생산양식에 기초한 중세를 종식하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앞당겼다. 1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은 보호주의와 파시즘을 발흥시켜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했다.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를 끝내고 신국가주의적 포스트 세계화 시대를 열고 있다.

미·중 경쟁서 미국 패권이 유지 또는 강화될 수 있어 #한국은 중국 리스크 최소화하는 헤징 전략 구사해야 #중국이 동북아서 패권 추구하며 힘을 과시하려 하면 #주변국들과 힘 합쳐 국제 규범 준수하도록 압박해야

현상유지적 세력 균형론자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4월 3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꿀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보호하기 위해 “(미국 등) 세계 국가들은 단결하라”고 촉구했다. 키신저는 코로나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각국이 각자도생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고, 국가 간 집단행동을 통해 공동으로 대유행 질병과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서는 국제 협력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키신저의 염원과는 달리 세계는 압도적으로 국가주의 방식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다. 각국은 국경을 넘어 확산하는 코로나 19의 공격에 국경 장벽을 세워 방어하려 한다. 그 결과 국경을 넘나드는 국가 간 무역과 인적 교류·교환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또 자국 경제를 세계 경제와 절연시키고, 경제적 민족주의를 동원해 자급자족 경제를 지향하며, 외국에 나간 자국 기업에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강요한다.

민족주의적 성곽시대로의 회귀

글로벌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높아진 원거리 글로벌 공급체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공급체인을 강화하는 내향적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성곽 도시 시대’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로 글로벌 공급체인이 약화하고, 비대면(untact) 사회·경제가 보편화하면서 세계 경제 전체가 위축돼 1930년대 대공황 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발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 질서가 신자유주의·세계화·지경학과 국제주의를 특징으로 한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신 세계질서는 신국가주의·반세계화 또는 포스트 세계화, 지정학, 신현실주의와 민족주의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 관계도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미·중은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강화해 세계 지도국의 책임을 다하기보다 상대방에게 ‘책임 떠넘기기 전쟁’을 하면서 자국 살길을 찾고 있다. G2 시대가 가고 지도국이 없는 G0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 대응 실패로 인한 국내 불만과 소프트파워 결손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고 있다. 중국에 대해 코로나 발원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대중 경제·무역·안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또 유럽과 연합해 중국에 대해 6조 달러의 천문학적 코로나 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전 세계 100여개 국가의 방역을 지원하는 ‘코로나 실크로드’를 가동함으로써 중국의 방역 소프트파워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는 미·중의 군사·경제·기술 패권 경쟁을 방역 패권 경쟁으로까지 확대하고 있고, 미·중 간 신냉전이 부활하고 있다.

미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 설득해야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완충국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전개될 미·중 패권 경쟁 격화에 대비할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의 미·중 패권 경쟁 시나리오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지만, 미국 우위의 비대칭적 G2 관계가 유지되는 현상 유지 시나리오다. 둘째, 다자주의 재충전과 강화를 통한 미국의 단일 헤게모니 부활 시나리오다. 셋째, 코로나19 위기 대응 실패로 미국의 국제 권위가 추락하고 동아시아에서 세력이 움츠러드는 사이, 중국이 힘의 공백을 메워 지역 세력균형 변경자(regional revisionist)로 등장하는 시나리오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헤게모니가 유지되거나 강화될 것이라는 첫째와 둘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에 대비해 한국은 미국 패권에 붙는 편승 전략과 함께 중국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헤징 전략을 동시에 구사해야 한다. 미·중 비동조화가 격화될 때를 대비해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에 집중된 투자·교역을 미리 분산시켜야 한다.

또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같은 동아시아 패권 유지 비용을 한국에 전가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입술이라는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전략을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미국과 미군을 한국에 붙드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가능성은 작지만 중국이 지역 세력균형 변경자로 지위 상승을 이루는 셋째 시나리오에 대비해 한국은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강화해 중국이 국제사회 규범·규칙을 준수하도록 중국 주변국들과 힘을 합쳐 압박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국제 협력주의 모범 보인 K방역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코로나19 공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G20 특별화상정상회의에서 한국의 방역 모델인 K방역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코로나19 공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G20 특별화상정상회의에서 한국의 방역 모델인 K방역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지금까지 성공적이다. 먼저, 정부는 의료진·시민단체·지방정부와 협업적인 진단(Test)·추적(Trace)·치료(Treat)라는 3T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질병관리본부가 중심이 돼 감염병 유행의 통제·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건강보험 접근과 만족도에서 세계 최고인 의료서비스시스템이 이런 방역시스템을 뒷받침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시민들이 ID 추적, 영장 없는 이동 추적, 프라이버시와 자유 침해를 거부한 반면, 한국 시민들은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감시에 협력하는 팔로어십을 발휘했다.

한국은 현재 K방역 시스템에 기초해 글로벌 또는 지역적 팬데믹 방역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국제 협력주의를 후퇴시키지 않으면서도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국가주의적 팬데믹 대응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고립 생활이 일상화하며 원격 의료와 온라인 강의, 온라인 배달 등 비대면 사회·경제 현상이 대세가 되고 있다. 만남·모임과 대면 접촉을 통해 소통하고 정체성을 확인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로서는 비대면 사회를 맞아 우울감과 고립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코로나 같은 세계적 감염병은 탈영토적 외부효과(externalities)와 국가간 무임승차 효과를 내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일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팬데믹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 협력과 공조는 필수다.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팬데믹 대응 책임을 둘러싸고 국가들이 서로 총질하지 말고 국제 협력과 연대로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국제적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 팬데믹은 국제 협력을 통해 해결돼야 하며, 탈화석 연료화와 지속가능한 생태 회복을 위해 ‘그린 뉴딜’과 같은 국제 협력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광주과기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