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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125도 휜 등뼈 꼿꼿이 세우는 척추측만증 세계적 권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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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명의 탐방 김용정 서울부민병원 진료원장 

지난 1월부터 서울부민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김용정 진료원장은 ’척추측만증 치료 기술을 전수하고 선진 수술 시스템을 정착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지난 1월부터 서울부민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김용정 진료원장은 ’척추측만증 치료 기술을 전수하고 선진 수술 시스템을 정착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척추는 정면에서 보면 일자 형태, 측면에서 보면 만곡(curve)을 띤다. 그러나 인구의 1~3%에서는 척추가 비정상적으로 휘는 ‘척추측만증’이 나타난다. 척추가 정면에선 옆으로 휘어 보이고, 측면으로 봐도 척추뼈가 회전하면서 변형돼 정상적인 만곡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주로 성장기인 10대에 발생해 환자와 부모의 마음을 애태운다.

한국·미국서 수술·연구 35년 #논문 3편은 척추외과 바이블 #'척수 모니터링' 우수성 전파

척추측만증은 척추 질환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서울부민병원 김용정(60) 진료원장은 한국에서 15년, 미국에서 20년 동안 척추측만증을 연구·수술한 이 분야 권위자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 전임의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형외과 전문병원인 HSS(Hospital for Special Surgery) 임상강사를 거쳐 지난해까지 컬럼비아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척추측만증 치료 노하우를 쌓았다. 그가 올해 서울부민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진료를 시작했다.

김 진료원장이 척추 변형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다섯 살 터울인 형의 영향이 컸다. 그는 세 살 때 결핵균이 척추에 감염돼 발생하는 결핵성 척추염을 앓았다. 김 진료원장은 “형은 키가 140㎝가 안 되고 평생 몸무게 40㎏을 넘긴 적이 없다”며 “형을 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소명을 품고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와 수술에 몰두했다. 그 결과 그가 발표한 논문 3편은 지금껏 출판된 척추외과 논문 2만여 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100편에 선정됐다. 특히 청소년기 척추측만증 수술에 관한 논문 2편은 소아정형외과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100편에 들었다. 그가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남다른 학문적 호기심과 성과 덕분이었다.

키 성장기에 척추측만증도 진행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10도 이상 휜 상태를 말한다. 청소년기에 나타난 척추측만증은 95%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이다. 나머지는 선천성이거나 신경·근육 질환과 같은 원인 탓에 발생한다. 10대에는 디스크가 노화하지 않아 척추가 휘어도 통증이 없고 운동 능력 역시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 대개 거울을 보다가 좌우 어깨높이가 다르거나 등·허리의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튀어나와 몸통이 골반의 가운데 있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발견한다. 여자는 10~15세, 남자는 13~18세에 키가 급속히 성장하는데 이때 측만증도 같이 진행하며 악화한다.

성장기엔 25도부터 보조기 치료가 권장된다. 측만이 있는 부위를 눌러 각도가 더는 진행하지 않도록 돕는다. 측만 각도가 50도가 넘어가면 수술을 고려한다. 5000명 중 한 명꼴이다. 한국인은 측만 각도가 80도가 넘는 중증이 흔치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가 수술한 16세 여아 사례는 좀 달랐다. 흉추(등뼈)가 C자형으로 125도 휜 경우다. 그는 “이 상태를 방치하면 척추 관절염이 생기거나 폐 기능이 안 좋아질 수 있다”며 “한국 의료진의 요청으로 수술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척추측만증 수술은 휘고 틀어진 척추를 일자로 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측만 각도와 성장 속도, 환자 상태를 고려해 만곡을 작게 만들어 틀어진 몸의 균형을 최대한 맞추는 게 치료 목표다. 이 환자는 척추에 나사못을 삽입하고 이를 연결해 교정하는 척추고정술을 받았다. 그는 “5시간에 걸쳐 수술을 진행한 결과 어깨가 반듯해지고 척추가 골반 가운데에 자리하도록 균형을 맞췄다”며 “수술 후 키가 8㎝가량 커져 환자가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에서 몸담았던 병원엔 중증 환자가 대다수였다. 연간 200건가량의 고난도 수술을 소화했다. 수술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가 쌓이자 전 세계에서 그를 필요로 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남미·아프리카 등지를 두루 다니며 400건 정도의 수술을 집도했다. 지난해 수술한 마다가스카르 13세 소녀도 그중 하나다. 6세 때부터 결핵성 척추염으로 척추가 휘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검사 결과 척추가 114도 휘어진 상태였고 결핵으로 척추뼈가 곪아 고름 주머니가 내부 장기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의료진과 함께 녹아내린 척추뼈 5개를 제거한 뒤 척추를 펴고 특수 장비를 이용해 척추뼈 자리를 채우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환자는 수술 후 고국으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흉추가 C자형으로 125도가량 휜 16세 환자의 척추고정술 치료 전후 사진.

흉추가 C자형으로 125도가량 휜 16세 환자의 척추고정술 치료 전후 사진.

수술 중 사고 미리 막는 시스템 

김 진료원장은 고난도 치료 기술만큼이나 선진 수술 시스템을 전수하는 데 애정을 쏟는다. ‘척수 모니터링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신경이 지나는 척추는 수술할 때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척추경 나사를 제대로 삽입하지 못하면 척수 손상으로 인한 마비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수술 중 척수 모니터링을 철저히 시행해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하지만, 운영 시스템이 여전히 미비한 편이다. 그는 “미국에서 4년간 척수 모니터링 강연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이 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척추측만증은 과도하게 불필요한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질환 중 하나다. 그는 “대부분 걱정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므로 과도한 불안감은 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소년기에 나타난 척추측만증은 외관상 문제로 심리적인 문제를 양산하기 쉽다. 한창 예민할 시기에 외모 콤플렉스로 이어져 그 자체가 스트레스이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가 환자를 볼 때 단순히 휜 척추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이유다. 김 진료원장은 “가벼운 각도로 휜 척추는 기형이라기보다 하나의 개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편”이라며 “앞으로 서울부민병원 의료진과 함께 수술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하고 출혈을 줄이는 등 환자의 빠른 회복과 기능 향상을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정 진료원장이 짚어준 척추측만증

이럴 때 척추측만증 의심을

● 좌우 어깨높이가 다르다
● 양쪽 유방의 크기가 서로 달라 보인다
● 등이나 허리 한쪽이 반대쪽보다 더 튀어나왔다
● 몸통이 골반 가운데 있지 않고 치우쳤다
● 허리 한쪽에만 주름이 있다

성장기 척추측만증 치료 이렇게

25도 미만) 정기적으로 척추 전문 의사와 만나 측만 진행 경과 관찰
25~40도) 측만증 진행 악화를 막는 보조기 치료 고려. 보조기는 하루 최소 12시간 이상 차고 성장 종료 시점까지 유지해야 효과적
40도 이상) 통증과 기능, 심리, 자기 모습에 대한 이미지, 정신 건강 측면을 두루 고려해 수술 고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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