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군함도 희생자 기리겠다던 일본 “조선인 차별 않고 귀여워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정부가 도쿄도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마련한 산업유산정보센터 내에 군함도 시설들을 설명하는 화면들. [사진 산업유산정보센터]

일본 정부가 도쿄도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마련한 산업유산정보센터 내에 군함도 시설들을 설명하는 화면들. [사진 산업유산정보센터]

일본 정부가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마련한 산업유산정보센터, 이곳에 ‘스즈키 후미오(鈴木文雄·사망)의 증언’이라며 전시한 내용은 기가 찬다. 재일교포 2세라는 스즈키의 발언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들 중 한·일 양국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나가사키(長崎)시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에 관한 내용이다.

도쿄 정부시설에 전시코너 개설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 요구사항과 상반된 내용 #한국 등 국제사회와의 약속 어겨

이지메(집단 따돌림)가 있었느냐.
“아니 귀여워해 줬지, 손가락질 등은 안 당했다.”
채찍질은.
“노동시켜야 하는데, 채찍질하겠냐.”
맨몸으로 노동했나.
“(맨몸이 아니라) 아버지 탄광 작업복에 재가 많이 묻어나왔다.”
돈은 잘 받았나.
“받았다. 떼어먹었으면 그냥 뒀겠냐.”

스즈키는 하시마 탄광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말을 토대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대우가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쏟아냈다. “아버지의 이런 증언은 맞다. 자신감을 갖고 한 것”이라고도 했다.

하시마에서 두부 가게를 했다는 일본인은 “조선인들이 우유를 정기적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급여를 제때 정확하게 받았다는 대만인의 말도 소개됐고, 그의 월급봉투가 전시됐다.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뉴스1]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뉴스1]

일반 관람을 하루 앞두고 14일 내외신 기자들에게 사전 공개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들이 설립 취지와는 달리 하시마 강제 징용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밝혔던 입장이나 유네스코가 일본에 요구했던 조치 사항과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한·일 관계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전망이다.

2015년 7월 ‘산업혁명 유산’ 23개 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 많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로 노역했다. 정보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대사)고 약속했다.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를 충실히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당시 ‘징용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한국을 고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1078㎡(약 326평)에 달하는 전시장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어떻게 산업유산을 일궈냈는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65인치 스크린 7장을 연결한 화면으로 각 시설을 설명하고, 메이지 유신의 역사와 근대 산업의 발전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한국 관련 전시는 차별의 존재를 부인하는 증언들, 그 외엔 자신들이 발령했던 징용령에 대한 설명과 한·일 청구권협정 내용 정도였다. 본인 의사에 반한 강제 노역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청구권 협정을 함께 소개한 건 강제 징용 보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센터의 전시 내용은 5년 전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과는 방향이 달랐다. 강제 징용을 반성하고 희생자를 기리기보다 오히려 ‘차별은 없었다’는 점을 부각하는 내용이었다.

일본 측의 의도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을 당시 군함도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무도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부인하는) 정부의 대응은 이런 정설을 ‘자학사관’으로 보고 이에 반론을 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사실을 덮는 역사 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도쿄=서승욱·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