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치매환자도 쇼핑 좋아한다는 생각이 만든 놀라운 변화

중앙일보

입력 2020.06.14 13:00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53)

2019년 이와테현 다키자와시(滝沢市)는 ‘치매를 배려한 슬로우 쇼핑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지역 대상’을 수상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내 슈퍼에서 치매 환자가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은 매주 목요일 오후에 슈퍼에 상주하는 자원봉사자인 쇼핑 파트너의 도움을 받으며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쇼핑 파트너는 쇼핑순서를 정해주거나 구매 물품을 선택하고 계산할 때 치매 환자를 도와준다.

치매 환자의 쇼핑을 도와주려고 많은 시민이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은 전용 계산대가 마련돼 주변의 눈치를 보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다키자와시는 슬로우 쇼핑을 지원하는 슈퍼를 확대하고 지역주민의 시민활동으로 정착시켜나가고 있다.

‘치매 배리어 프리’란 치매 환자가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물리적·정신적 장벽을 제거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pexels]

‘치매 배리어 프리’란 치매 환자가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물리적·정신적 장벽을 제거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pexels]

치매 환자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쇼핑조차도 어렵다. 실제로 치매 환자는 혼자서 쇼핑준비에만 많은 시간을 쓴다. 쇼핑 전에 휴대전화로 냉장고에 들어 있는 물품을 사진 찍어두고 중복구매를 피하려고 한다. 구매 물건과 장소를 메모하고 쇼핑에 필요한 금액 이상의 금전을 가져가지 않도록 준비한다. 막상 슈퍼에 도착하면 출구를 알 수 없거나 화장실 위치도 상당히 신경 쓰인다. 간혹 거스름돈 받는 것을 잊어버리고, 계산대 앞에서 줄 서서 대기하고 돈을 늦게 꺼내는 스트레스도 크다.

그래도 치매 환자는 쇼핑을 좋아한다.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슈퍼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다키자와시는 치매 환자의 가장 인간다운 욕망을 실현하고자 슬로우 쇼핑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프로젝트는 힘든 과정을 거쳐 어렵게 추진되었지만, 예상을 넘어 치매 환자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치매 환자가 간단한 쇼핑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치매 환자가 보통 사람처럼 호기심을 갖고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따뜻한 인간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키자와시의 슈퍼 직원들은 치매 환자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실천사항도 만들어주었다. 그랬더니 치매 환자는 슈퍼에서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지급하며 쇼핑을 했다. 활기차게 외출하고, 슈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오늘의 식사메뉴를 생각하고, 요리에 그리움을 담고, 함께 먹을 사람과 대화도 했다.

오늘은 슈퍼에 어떤 물건이 있었고, 쇼핑 파트너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가족에게 말하며 활력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물건을 선택하며 쇼핑하는 것만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다키자와시는 쇼핑에 고충을 겪는 치매 환자를 배려하는 대책으로 다른 지역사회의 롤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치매 환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실현하려면 치매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렵다. 지자체를 비롯해 치매 환자, 주민, 민간기업이 한 팀이 되어 지역별 생활환경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대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해 나가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지역사회 전체가 그 과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수립해야 한다. 처음부터 완성된 대책이 아니라 간단한 실천사항이라도 개발하고 차근차근 추진하는 환경을 치매 환자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그 대책의 성과를 치매 환자 당사자에게 평가받고,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키자와시는 치매 환자의 가장 인간다운 욕망을 실현하고자 슬로우 쇼핑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치매 환자가 슈퍼에서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지급하며 쇼핑을 했다. [사진 pixabay]

다키자와시는 치매 환자의 가장 인간다운 욕망을 실현하고자 슬로우 쇼핑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치매 환자가 슈퍼에서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지급하며 쇼핑을 했다. [사진 pixabay]

‘치매 배리어 프리’란 치매 환자가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물리적·정신적 장벽을 제거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2019년 6월 치매대책추진관계각료회의에서 발표한 치매대책추진대강에 치매 배리어 프리 추진대책을 담았다.

치매에 걸려도 가능한 익숙한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 장벽을 줄이려는 대책이다. 치매 배리어 프리 사회는 치매에 걸린 사람도 살아가기 쉬운 사회, 이른바 지역공생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일본은 치매 배리어 프리 대책을 통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경제활동을 유지하고, 가족의 간병이직을 방지하려는 사회경제적 성과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치매 대책으로서 개발된 제품과 서비스를 세계시장에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고, 세계의 고령 국가에 모범이 되는 과제해결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지금까지 배리어 프리는 법률제도로 추진됐다. 치매 배리어 프리 사회는 그것과 다르다. 전체 사회 형태를 치매 환자의 살아가기 쉽게 만든다는 컨셉이다. 구체적으로 이동과 소비, 금융, 소매 등 다양한 생활환경을 개선해 치매 환자가 생활하기 쉬운 사회를 만든다는 발상이다.

예를 들어 공공시설에서 단차를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1994년에 실시된 하트빌딩법으로 공공시설의 배리어 프리화가 처음 실시되었다. 하트빌딩법은 2006년 교통 배리어 프리법과 통합되어 배리어 프리 신법(고령자·장해자이동등원활화촉진법)이 되었다. 고령자와 장해우가 원활하게 이용하고 이동하는 건물의 배리어 프리를 고려하고 있다.

이 법률에 따라 누구나 안심하고 통행할 수 있는 폭넓은 도로정비, 치매 고령자를 구제하기 위한 장해물 감지장치 설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 목표를 포함한 대책을 추진하였다.

소프트 대책도 마련하였다. 버스 운전사의 치매 환자에 대한 접객 가이드라인 제시, 사업자의 충실한 교육과 적절한 접객 추진, 공공교통 사업자의 치매 고령자에 대응한 접객과 교육계획 작성과 대응상황보고 및 공표를 의무화하였다. 교통안전을 위해 고령자가 운전할 수 있는 면허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치매 환자가 살기 쉬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역의 안부 체제를 정비하고, 2020년까지 고령자용 주택비율 3~5%의 목표도 제시했다.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책을 지원하는 관점에서 민간기업을 인증·표창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치매 대책을 실시하는 기업이 치매 배리어 프리를 선언하면, 그 기업을 인증하는 제도다.

적절한 치매 관련 대책을 추진하는 기업을 공개(인증마크 부여, 웹사이트 공표)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지역제휴를 촉진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치매 환자 당사자의 의견을 근거로 개발된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 지원과 사례수집, 식품구매에 편리한 생활환경 정비, 쇼핑하기 쉬운 결제시스템, 주택연금제도의 보급, 후견제도지원예금도입 추진 등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었다.

후생노동성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0% 이상이 치매프리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수립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직원교육, 고객대응, 지역제휴, 사내규정과 점포의 설비 등에 대해 대응할 과제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 치매 관민협의회의 배리어 프리 워킹그룹과 제휴해 기업이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치매 배리어 프리를 쉽게 설명한 교재 제작, 지역사회에서 사업자와 지자체가 치매에 관한 정보공유 대책 등 치매 배리어 프리 추진환경 정비, 기업의 인증제도 취득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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