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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남에 바나나 주렁주렁···'아열대 작물' 갈아탄 농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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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직 푸른 바나나들이 가지에 매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해남지역 첫 바나나 농장 주인 신용균(74)씨는 "바나나가 노랗게 익어 수확하기 시작하는 7월이면 해남도 바나나 산지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땅끝 해남지역 첫 바나나 수확 한 달 앞 둬 #지난해 따뜻한 겨울 등 아열대 재배 가능 #"마늘·양파도 이상기온에 가격 폭락올까 불안"

따뜻한 겨울…아열대도 수지맞는다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의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신용균씨가 7월 출하를 앞둔 바나나 생육상태를 살피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의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신용균씨가 7월 출하를 앞둔 바나나 생육상태를 살피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장정필

 신씨가 바나나를 키우겠다 결심한 것은 '이상기온' 때문이다.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2월까지 광주·전남 겨울철 평균 기온은 4.8℃로 1973년 기상관측 이래로 가장 따뜻했다.

 국산 바나나 재배는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제주도 지역에 집중됐다. 신씨는 "아열대 작물을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기온"이라며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온도를 18℃ 이상 유지해야 하는데 해남은 내륙에서 가장 남쪽이라 다른 곳보다 따뜻해 입지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신용식씨 부부가 가지에 달린 바나나를 손질하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신용식씨 부부가 가지에 달린 바나나를 손질하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장정필

 신씨의 비닐하우스를 찾은 11일은 비가 내린 탓에 약간 선선한 날씨였다. 하지만 바나나가 자랄 수 있는 생육조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러도 가동하지 않았다. 가을철로 접어드는 9월에도 해가 저문 뒤에만 보일러를 가동하면 된다.

 국산 바나나는 수입산보다 친환경으로 재배하면서 신선도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신씨는 "바나나 소비자가 외국산을 꺼리는 이유가 농약과 방부제 우려 때문"이라며 "국산은 장기 운송이 필요하지 않아 농약 등을 쓰지 않으면서 나무에서 아주 노랗게 익은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했다.

"다른 작물 키워도 이상기온에 가격 불안"

 신씨는 "13살부터 농사를 시작해 60년 동안 벼·마늘·양파·호박·배추 등 안 키워본 작물이 없지만, 가격 등락 폭이 너무 심한 탓에 수지타산이 안 맞아 그만뒀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전남 신안군 마늘을 수매하고 있다. 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전남 신안군 마늘을 수매하고 있다. 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 9일부터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으로 생산 과잉돼 가격이 폭락한 전남 신안 등 남부지역 마늘(남도종) 1000t을 수매하기 시작했다. 20㎏ 기준 남도종 마늘 도매가격은 11일 7만5000원으로 지난해 6월 12만원 대비 37.5% 하락했다. 이미 정부 마늘 수매물량으로 1만t을 계획했지만, 가격이 급격히 하락해 1000t을 추가 수매하는 상황이다.

 신씨는 "배추를 키워 팔 때도 가격이 폭락하면 5t 트럭에 한가득 채워 농산물 도매시장에 보내도 1대당 20~30만원밖에 수익이 나지 않았다"며 "인건비 떼고 나면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라고 했다.

지자체도 아열대 작물 재배 권장 왜?

 해남군은 아열대 지역 농민에게 패션프루트·애플망고·체리 등 아열대 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신씨도 해남군으로부터 바나나를 기르는 데 필요한 농업기술 교육과 예산 지원을 받아 바나나 재배에 도전했다.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홍홍금씨가 바나나 꽃을 살펴보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홍홍금씨가 바나나 꽃을 살펴보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장정필

 지자체 입장에서는 농민들이 아열대 작물로 고소득을 올리고 배추나 마늘·양파 등 특정 품종에만 생산이 집중돼 가격 폭락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막을 방법이 아열대 작물 재배 등 품종 다변화다.

해남군 관계자는 "우리 지역은 여주나 부지화·참다래 등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이 125㏊로 전남 최대 규모다"며 "아열대 작물 육성이 기후 변화 현상에 대응하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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