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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코로나19가 바꾼 소비동선과 상권

중앙일보

입력

유동인구와 소비동선의 변화… 대면·접촉 피해 쾌적한 환경 찾아 이동

강·산 옆에 가든식당 내면 잘 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부동산 상권 지형에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상권 변화는 지역·입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생활 안정과 경제 회복을 위해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도 도심의 상권 변화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상권 변화를 일으키는 주 원인은 유동인구와 소비동선의 변화다. 코로나19 발발로 떠오른 쟁점들이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어서다. 비대면, 비접촉, 자가격리, 원격, 거리두기, 개인 공간·차량, 자연환경, 재택근무, 추적시스템, 마스크, 확진동선, 온라인쇼핑, 레저 등의 키워드들이 소비동선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인천 용유도는 주말마다 북적거린다. 해변은 인파로 피서철을 방불케 한다. 지척에 해변을 두고도 진입로가 북새통을 이뤄 접근하기 어렵고,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어 해변 간이도로까지 차량이 넘쳐난다. 마시안해변 도로엔 음식점을 드나드는 차량 행렬로 통행하기 어렵다. 점심시간 음식점들은 대기표를 받고 30여분을 기다려야 겨우 자리가 날 정도다. 음식점·커피숍 주인들은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2월엔 바닥을 맴돌았는데 점차 회복하더니 5월엔 지난해를 웃돈다”며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어난 것도 한 몫 한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수도권과 대도시에선 ‘도심 탈출’이 두드러졌다. 이 현상은 휴일에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근교 자연으로 이동, 인접상권 수요 증가

한국도로공사가 군자·동서울·서울·서서울 등 서울 외곽의 고속도로 영업소 4곳의 차량통행량을 조사한 결과 ‘대구 슈퍼전파’, ‘사망자 첫 발생’ 등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하던 2월말~3월초엔 통행량이 90만대 수준이었다. 이후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3월말~4월초엔 100만대를 넘어 4월 중순엔 약 112만대까지 늘었다. 황금연휴로 나들이객이 급증한 5월엔 통행량이 더욱 급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도시 인근 국립공원에도 코로나 사태 후 탐방객 수가 급증했다. 국립공원공단 집계 결과, 2월 23일~4월 19일 동안 북한산에는 123만7775명이, 계룡산엔 35만9410명이 찾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4%(37만9311명), 47%(11만5349명)나 늘어난 규모다. 서울교통공사 집계 결과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의 승·하차 인원은 1월 235만3684명에서 2월 198만2636명, 3월 170만1207명, 4월 180만8020명으로 ‘V’자 추세로 회복하고 있다. 3호선은 서울 강남·강북과 고양지역 주요 도심을 지나는 노선으로, 연신내역이 북한산 입구와 가까워 등산객이 많이 이용한다.

북한산·계룡산 등은 다른 산과 달리 도심에서 가깝고 접근하기 편리한 도시형 국립공원이다. 서울·경기도나 대전·공주 주민이면 개인차량을 이용해 당일치기로 즐길 수 있어, 코로나를 피해 도시를 탈출한 레저인구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덕에 서울 도봉구 도봉동·쌍문동, 강북구 수유동, 은평구 갈현동·불광동 등 재래시장과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북한산 인접 상권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매출 올리기에 선방하고 있다. 은평구는 도심 배후주거지여서 정주인구가 많은 점도 매출을 뒷받침해준다. 연신내 역세권의 한 분식가게는 “등산객이 늘면서 간식거리와 식사 수요가 지난해 이맘때보다 1.5배 정도 증가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사람이 늘면서 동네 배달주문도 늘었다”고 말했다.

주요 상권이자 유명 관광지인 명동·이태원·종로·홍대 상권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높은 임대료와 경기 저성장도 코로나 피해를 부추겼다. 반면 주택가 골목상권이나, 교외지역, 자연과 인접한 변두리 상권 등은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국토연구원이 코로나 확진자 발생 전·후로 대전(2월 21일 첫 확진자 발생)의 도시 유동인구 변화를 측정했다. KT 유동인구 데이터를 활용해 ▷2019년 2월 대비 2020년 2월 주말 유동인구 변화 ▷2020년 2월 대비 3월 유동인구 변화의 지역별 증감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유동인구가 도심 속 공원에서 교외로 이동하고, 도시 근교 외곽지역에서 움직임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월 주말 유동인구의 대부분은 유림공원, 갑천변, 남간정사, 보문산, 화폐박물관 등 주로 도심 자연공원에 몰렸다. 한 달 후 3월 유동인구는 금강변, 대청호, 우암사적·세천공원, 만인산, 산서체육공원, 도솔산, 구봉산, 장태산, 계룡산 수통골, 금병산, 동화울 수변공원 등에서 급증했다. 이 지역들은 자연환경이 우거진 도시 외곽이다. 3월엔 대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던 때였다.

오프라인 매장은 방문횟수 줄고 한번에 대량구매 늘어

유동인구가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자 ‘가든식당’으로 불리는 전원형 음식점들과 근교 유원지 매장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요한 국토연구원 국토지식센터 국토빅데이터팀장은 “3월 유동인구의 변화 모습을 보면 대청호를 둘러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를 중심으로 몰렸으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비접촉 비대면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연을 즐기려는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답답함이 동선에서 읽힌다”고 설명했다.

통계청과 SK텔레콤이 모바일 빅데이터를 활용해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월부터 5월까지 전국 SKT 가입자를 대상으로 국내 유동인구 동선을 추적했다. 분석결과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인구이동량은 3월초부터 점차 증가해 5월 들어 전년 대비 약 83% 수준으로 회복했다. 시설유형별로 유동인구의 이동 양상을 살펴보면 5월 들어 관광지와 레저스포츠 쪽에선 급증했다. 상업지역, 대형 아울렛, 사무지역, 주거지역에선 이동량이 둔화되거나 감소했다. 사람간 접촉 가능성이 높은 곳은 피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으려는 심리가 강해졌음을 엿볼 수 있다.

국토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의 변화로 노래방·피트니스센터·영화·공연·숙박 등 다중집합·대면서비스 관련 업종의 매출 타격이 크고, 이들이 밀집한 도심 상권에 변화가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같은 도심이라도 골프연습장·동물병원·성형외과·슈퍼마켓·약국·애견숍·인테리어숍·정육점 등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보다 증가했거나 향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쳤던 올해 1분기 신용카드 매출을 통해 소비행태의 변화를 추적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보니 유통 분야에선 코로나19 사태로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올해 1분기 쇼핑 매출은 지난해 대비 온라인에선 인터넷쇼핑(41%)·홈쇼핑(19%)이, 오프라인에선 슈퍼마켓(12%)·편의점(6%)이 각각 급증했다. 반면 면세점(-52%)·아울렛(-31%)·가전제품전문매장(-29%)·백화점(-23%)·대형마트(-17%)은 급감했다.

특이한 점은 오프라인 매장 이용시 구매행태의 변화다. 지난해보다 이용건수는 줄었으나 건당 이용금액은 늘었다. 비대면 쇼핑을 위해 매장 방문횟수는 줄이고, 한 번에 많이 사두려는 대량구매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이와 함께 집과 가까운 골목상권 이용률도 늘어났다. 집과 집주변에 머무르면서 소비동선이 집과 가까운 도보권 거리 안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국산 신차(-23%)나 중고차(-22%)의 소비는 줄었으나 자전거(45%) 소비가 크게 증가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식료품 소비에도 변화가 크다. 정육점·축산물(15%), 농협식품전문점(10%), 농산물·청과물(5%)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 이는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일명 ‘홈쿡’으로 소비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흥·사치재 분야에서 노래방(-26%)·단란주점(-21%)·안마시술소(-22%)·귀금속(-16%) 업종은 모두 매출이 하락했는데, 주류전문점(15%)만 증가한 점도 술을 집에서 마시려는 홈쿡 트렌드의 하나로 엿보인다.

의료 분야에선 요양복지시설(-27%)·산후조리원(-20%)·일반병원(-10%)·대학병원(-8%)·한의원(-16%) 등 대면접촉이 불가피한 의료 업종 대부분의 매출이 감소했다. 하지만 안과(10%)·성형외과(4%)·수의과동물병원(9%)은 증가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눈과 성형,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레저·문화에선 영화관·공연장·테마파크·사우나·찜질방·헬스클럽·당구장은 매출이 떨어졌다. 하지만 골프장은 나 홀로 승승장구했다.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용부동산센터장은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 도심에선 소비성향이 강한 기업 업무지구로 상권수요가 기울 수 있다”며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 재택근무 등이 확대되면 유흥문화가 줄어 저녁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고밀도·압축형 도시개발 정책과 마찰 우려

다만, 유동인구 동선과 상권 지형의 변화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기존의 도시관리 정책과 갈등을 빚을 우려가 커진다. 예를 들어 사람간 교류를 촉진하는 공간 조성, 고밀도 압축 위주의 도시 개발, 불특정 다수가 몰리는 대중교통과 공공·공유시설 설치 확대에 대해 재논의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근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당연시 여겼던 가로활성화, 관광도시, 압축개발 등의 도시개발 정책이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코로나19 대응책들에 밀려 표류하거나 제동이 걸릴 수 있다”며 “일례로 대중교통 이용률이 줄어 대중교통 수익률이 떨어지면 공공의 부담이 커지고 역세권 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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