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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아 번 7억 땅 쾌척한 병록씨 선행에 코로나 기부 릴레이

중앙일보

입력

취약계층의 코로나19 극복을 돕기 위해 평생 모은 땅 1만평을 기부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 변선구 기자

취약계층의 코로나19 극복을 돕기 위해 평생 모은 땅 1만평을 기부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 변선구 기자

“죽어서 가져갈 땅도 아닌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상황에 놓인 어려운 분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50년 가까이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땅 3만3000㎡(1만평, 임야, 시가 5억~7억원)를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은 김병록(61)씨가 12일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 3월 12일자 1면〉

김씨는 지난 3월 23일 파주시청을 방문, 이 땅에 대한 기부채납 서약서를 제출했다. 그는 그러면서 “저의 기부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기부 릴레이가 이어진다면, 코로나로 위기에 놓여 실의에 빠진 분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종환 파주시장, 김병록씨에 감사패 전달키로  

이와 관련, 최종환 파주시장은 오는 26일 파주시청 월례조회 자리에 김씨를 초청해 감사패를 전달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최 시장은 “김병록씨의 어려운 결단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실의에 빠진 이웃을 돕는 운동이 확산하는 데 기여한 공로가 크다”며 땅을 기부해 준 김씨에게 감사의 마음 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시장은 “김씨의 기부가 지역사회와 우리 사회 전반에 코로나 기부 릴레이를 확산하는데 촉매 역할을 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병록씨가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한 자신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임야를 가리키고 있다. 전익진 기자

김병록씨가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한 자신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임야를 가리키고 있다. 전익진 기자

파주시는 최근 김씨가 기부한 땅에 대해 시의회의 공유재산관리계획 승인을 거쳐 시의 행정재산으로 소유권을 이전, 행정절차를 완료했다. 시는 이에 따라 금명간 땅값에 해당하는 추경 예산을 편성해 김씨 희망대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부닥친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신속히 진행키로 했다.

파주시에 코로나 기부 행렬 이어져  

김씨의 기부 여파로 파주시에는 코로나19 지원을 위한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31차례에 걸쳐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방역물품 6만9091개가 시에 기부됐다. 또 현금 38건, 총 1억2620만원도 접수됐다. 파주시는 성금과 방역물품을 취약계층 및 사회복지시설 등에 우선 지원할 예정이다.

구두수선공 김병록씨(오른쪽)가 아내 권점득씨와 함께 지난 3월 23일 파주시청을 방문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돕고 싶다“며 자신의 땅 1만평 기부하는 내용의 기부채납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파주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오른쪽)가 아내 권점득씨와 함께 지난 3월 23일 파주시청을 방문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돕고 싶다“며 자신의 땅 1만평 기부하는 내용의 기부채납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파주시]

김씨가 기부한 땅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11세 때부터 50년 가까이 구두를 닦고 수선해 온 김씨는 6년 전 이 땅을 매입했다. 그는 “노후에 오갈 곳 없는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농사지으며 살려고 사 두었던 곳”이라고 했다.

김씨는 고양시 행신동 노점에서 구두 수선을 해왔다. 그러다 2008년부터는 서울 상암동에 10㎡(3평) 크기의 점포를 임대해 아내 권점득(59)씨와 구두수선점을 운영 중이다. 현재 큰딸(34)을 출가시키고 아내·작은딸(30), 다운증후군을 앓는 1급 지적장애인 아들(27)과 행신동의 66㎡(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노후도 준비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에 도움도 되는 일을 하려고 사놓은 땅이라고 한다.

“IMF 때보다 더 심한 점포 운영난”    

김씨는 “이번 코로나 확산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점포 운영난을 겪게 되면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실감한 게 땅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내가 가진 것을 내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앞서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1년간 헌 구두 5000여 켤레를 수선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때로는 헌 우산·양산을 고쳐 건넸다. 1997년부터는 이발 기술을 배운 뒤 매달 4~5차례 요양원·노인정 등을 찾아 이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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