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내 명의로 등기 된 친구 땅, 내가 팔았다면 횡령죄?

중앙일보

입력 2020.06.13 08:00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30)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 오늘날 부동산이 실제 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어 내 것이지만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워 홍길동 같은 경우가 있다. 바로 ‘명의신탁’이다. 홍길동과 명의신탁은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있지만 둘 다 실제와 외형이 다르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부동산 외에 주식도 명의신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명의신탁이란 용어가 생소한 분을 위해 그 의미를 설명하면, 쉽게 말해 자신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해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실제 소유주를 ‘명의신탁자’, 이름을 빌려준 사람을 ‘명의수탁자’라고 한다.

왜 굳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종중 같은 단체가 소유한 부동산은 종중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기 어려워 종중원 중 한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투기·탈세와 같은 부정한 목적으로 명의신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과 그 밖의 물권을 실체적 권리관계와 일치하도록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하게 하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명의신탁이란 자신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해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실제 소유주를 ‘명의신탁자’, 이름을 빌려준 사람을 ‘명의수탁자’라고 한다. [사진 Pixabay]

명의신탁이란 자신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해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실제 소유주를 ‘명의신탁자’, 이름을 빌려준 사람을 ‘명의수탁자’라고 한다. [사진 Pixabay]

이 법률에서는 ‘명의신탁약정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로 한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종중이나 부부, 종교단체의 명의신탁으로서 조세포탈 등의 목적이 아닌 경우는 예외적으로 허용 된다). 또 위 규정에 의한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제3자를 보호하고 있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그 형태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명의신탁자가 자신의 부동산을 명의수탁자에게 등기 명의를 이전하는 ‘양자간 명의신탁’, ②명의신탁자가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등기는 명의수탁자 앞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 ③명의수탁자가 계약 당사자가 되어 계약을 체결하고 등기도 명의수탁자 앞으로 하는 ‘계약명의신탁’이다.

명의신탁의 경우에는(그것이 비록 불법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의 깊은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부동산의 등기가 명의수탁자 앞으로 되어 있어서 명의수탁자가 약속을 어기고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 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명의신탁이 이루어진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명의수탁자가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선대에서 이루어진 명의신탁 약정을 알지 못해 부동산을 돌려 주지 않고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처분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명의신탁자와의 약속을 어기고 부동산을 처분한 명의수탁자는 과연 횡령죄 등으로 형사처벌까지 받게 될까.

우선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대법원은 횡령죄는 물론 배임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횡령죄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어야 하고,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는 어떨까. 종전에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아 명의수탁자가 그 명의로 신탁된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면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2016년 이러한 판례가 변경되었다. 즉,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은 계약명의신탁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법률전문가도 쉽지 않은데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만 횡령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여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를 살펴보자.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고, 아직 판례가 변경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비록 하급심이기는 하지만 주목할 만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즉, 202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중간생략 명의신탁’에 있어 횡령죄 성립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아 사망한 명의신탁자 상속인으로부터 부동산 지분 반환 요청을 받고도 이를 거부한 명의수탁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불필요한 분쟁과 손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실제 권리관계에 맞게 등기를 하는 것이다. [사진 Pixnio]

불필요한 분쟁과 손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실제 권리관계에 맞게 등기를 하는 것이다. [사진 Pixnio]

그럼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 명의로 된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앞서 살펴본 형사 판결과는 별개로 민사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전원합의체판결의 대상이 된 사안을 요약하면, 농지를 소유한 사람이 농지법상 처분명령을 회피하기 위해 명의수탁자와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하고 명의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가 모두 사망하고, 명의수탁자의 상속인이 위 농지에 대해 상속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였다. 그러자 명의신탁자의 상속인이 명의수탁자의 상속인을 상대로 위 농지에 대해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민법 제746조에서는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불법원인급여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대법원에서는 법에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에게 마친 등기가 과연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위와 같은 경우 부동산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불법원인급여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수 의견은 불법원인급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고, 결국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유지하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상 부동산 명의신탁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불필요한 분쟁과 손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실제 권리관계에 맞게 등기를 하는 것이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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