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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한번 먹으니 끝"···벌써 사라진 재난지원금 5조6000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일 오후 12시 30분쯤 서울 신당중앙시장의 중앙 통로가 텅 비어 있다. 이후연 기자

12일 오후 12시 30분쯤 서울 신당중앙시장의 중앙 통로가 텅 비어 있다. 이후연 기자

12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신당중앙시장에는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보다 물건을 팔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손님이 몰리는 주말이 아니긴 하지만 생선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평일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사람이 정말 없는 것”이라며 파리만 쫓았다. 손님이 없다 보니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인들도 많았다.

같은 날 오후 1시 30분 서울 남대문시장은 그래도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상인과 흥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 최대 규모 시장’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었다. 시장 명물이라는 호떡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가게 앞에 서서 손님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소매 티와 후드티를 주로 판매하는 한 상인은 “2~3주 전만 해도 꽤 좋았는데…”라며 “장사가 점점 안 되고 있어서 큰일이다”라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재난지원금 이전으로 돌아가나"  

12일 1시쯤 서울 남대문시장 옷가게 골목. 비교적 손님이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 이후연 기자

12일 1시쯤 서울 남대문시장 옷가게 골목. 비교적 손님이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 이후연 기자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 실제 지급되기 시작한 지난달 13일로부터 30일이 지난 이날 ‘재난지원금 덕에 숨통이 트였다’던 대다수의 중소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벌써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재난지원금을 사용하기 위해 이들을 찾던 고객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까지 다시 두 자릿수로 늘어나면서 재난지원금이 소비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전통시장 안에서 보쌈을 판매하는 한모씨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데다가 재난지원금도 쓸 사람은 다 썼는지 전통시장이 다시 재난지원금 지급 이전으로 돌아간 분위기”라며 “아직 완전히 그때로 돌아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쓸쓸하게 장사하다 문 닫고 집에 가는 날이 많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속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씨도 “재난지원금이 풀리니까 사람들이 속옷도 좀 비싼 거로 찾고, 괜히 더 몇 벌 갖추려고 하고 했는데 이제 다시 도매상들밖에 없다”며 “우리뿐 아니라 앞집, 옆집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한 삼겹살집 사장은 “몇 주 전만 해도 재난지원금으로 가족끼리 와서 외식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양도 꽤 많이 시켰다. 최근 며칠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님이 뚝 끊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용기한 남았는데 "이미 다 썼다"

12일 오후 12시 30분쯤 서울중앙시장 내의 한 음식점 좌석들이 텅 비어 있다. 이후연 기자

12일 오후 12시 30분쯤 서울중앙시장 내의 한 음식점 좌석들이 텅 비어 있다. 이후연 기자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급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중 지금까지 약 40% 이상이 ‘사용 완료’된 상태다. 재난지원금은 지난 7일 0시 기준으로 현금, 신용·체크카드 포인트, 선불카드, 상품권 등의 형태로 13조5908억원이 지급됐는데 이 중 지난달 13일부터 31일까지 신용·체크카드 포인트 방식으로 지급된 재난지원금 5조6763억원이 사용됐다. 지급된 재난지원금의 41.7%가 이미 사용된 셈이다. 신용·체크카드 포인트 외에 상품권이나 현금 등의 사용 금액을 포함하면 소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미 ‘재난지원금을 다 썼다’는 가계들이 나오고 있다. 사용 기한인 8월 말까지 다 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3인 가구 80만원을 지원받은 주부 이모(48)씨는 “아이 교육비 내고 외식 두 번 하고, 안경 하나 샀더니 5만원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2인 맞벌이 가구인 김모(35)씨는 “소고기 한 번 사 먹고, 병원비 필요해서 냈더니 잔액이 0원이다”라며 “쉽게 들어온 돈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더 쉽게 쓴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경기부양 효과 위한 추가 정책 필수"   

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을 당시 경기 부양 효과에 대해서는 현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카드 포인트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의 26%가 연 매출 3억원 이하의 영세 가맹점에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문가들은 재난지원금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추가 정책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긴급재난지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또 앞으로는 지원금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저소득층의 고용 창출 등 근본적인 경기 부양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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