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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달 보내고, GPS 개발···세상이 빚진 그들 공통점 '흑인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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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화 '히든 피겨스'는 미국의 달탐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실화를 다뤘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미국의 달탐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실화를 다뤘다.

아폴로11호를 달에 보내는데 결정적이었던 수식을 만들고, 한센병을 치료하는 데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고, GPS 기술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과학자들. 모두 흑인 여성이었다.

영화 ‘히든피겨스’의 실제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1918~2020)은 ‘인간 컴퓨터’로 불리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다. 화학자였던 앨리스 어거스타 볼(1892~1916)은 한센병 치료를 위한 ‘볼 요법’을 개발했다. 글래디스웨스트(90)가 없었다면 아직도 운전대를 잡은채 지도책을 더듬거려야 할지 모른다. 전(全)지구 위치파악시스템인 GPS를 개발하는 데 그는 조용하지만 핵심적 역할을 했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뒤 미국 전역과 각계에선 추모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학계도 마찬가지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11일(현지시간) 흑인 과학자들을 직접 조명하는 특집을 게재했다. 19세부터 활약한 27명의 과학자를 선정했는데, 그 중 16명이 여성이다. 그 중 6명을 출생연도 순으로 소개한다.

①레베카 리 크럼플러(1831~1895)  

레베카 크럼플러의 의학 교과서 표지. [위키피디아]

레베카 크럼플러의 의학 교과서 표지. [위키피디아]

미국 흑인 여성 중 처음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이언스는 현대 의학 초기의 대표적 교과서로 꼽히는 『의학적 대화』가 크럼플러의 작품이라는 데 주목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크럼플러는 아픈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여성 친척에 의해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병자를 계속해서 돌보는 일의 소중함을 어렸을 때부터 깨우쳤다”고 책에 적었다. 간호사로 먼저 경력을 시작한 그는 곧 뉴잉글랜드 여성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의사 면허를 받았다. 남북전쟁(1861~1865) 이후 그는 버지니아로 이주해 3만명에 달하는 마을 주민의 건강을 책임졌다.

②앨리스 어거스타 벨(1892~1916)  

미 서부 워싱턴주립대를 졸업한 화학자였던 젊은 앨리스 어거스타 볼은 하와이로 건너갔다. 하와이대 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박은 첫 흑인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를 눈여겨본 이가 있었으니 해리 홀만이라는 하와이의 한 외과전문의였다. 한센병 치료에 집중했던 홀만의 권유에 따라 볼은 한센병의 원인인 나균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다. 당시 한센병 치료제 제형은 지성(脂性)이어서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약점이 있었는데, 볼은 이를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수용성으로 바꿔 환자에게 직접 투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1941년 한센병 치료제가 발견되기 전까지 약 30년간 볼의 치료제가 통용됐다. 볼은 1916년 2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남성 동료 화학자인 아서 딘이 볼의 연구결과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사람 목숨 구하는 데는 남녀도, 피부색도 따로 없다는 것을 벨과 그의 남성 동료들은 함께 증명했다.

③도로시 본 (1910~2008)

NASA에서 일하던 시절의 도로시 본. [NASA]

NASA에서 일하던 시절의 도로시 본. [NASA]

영화 ‘히든피겨스’의 주인공 중 하나. ‘인간 컴퓨터’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매니저 타이틀을 달았다. 처음엔 고교 수학교사로 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9)이 터졌다. 비행기 설계 및 조종술에 필요한 수학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에 응해 랭리항공우주 연구소에 입사했다. 복잡한고도 위험할 수 있는 항공 수식에서 도로시 본은 두각을 나타냈고 NASA의 전신인 NACA(미국국립항공자문위원회)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그는 유색인종 및 여성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장소에서만 일했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낭중지추. 곧 책임자가 승진했고, 전설로 남았다.

④ 캐서린 존슨(1918~2020)  

NASA가 캐서린 존슨의 사망을 애도하며 공개한 사진. 1961년 당시 사진이다. [NASA]

NASA가 캐서린 존슨의 사망을 애도하며 공개한 사진. 1961년 당시 사진이다. [NASA]

아폴로11호의 달 탐사는 도로시 본과 캐서린 존슨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존슨은 어렸을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고등학교는 14살, 대학교는18세에 졸업했다. 이후 NASA에 입사했는데, 많은 미국 연구기관과 기업은 여성에겐 낮은 임금을 줘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존슨은 곧 두각을 드러냈고, NASA는 당시 남성만 참석가능했던 회의에 그를 초대했다. 1986년 은퇴할때까지 존슨은 NASA에서 계속 숫자를 다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그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회의에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참여해 수식을 풀고 있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회의에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참여해 수식을 풀고 있다.

⑤마리 M. 달리(1921~2003)  

흑인 여성 화학자로 콜레스테롤과 고혈압의 관계를 밝히는 데 역할을 했던 마리 달리. [사이언스 캡처]

흑인 여성 화학자로 콜레스테롤과 고혈압의 관계를 밝히는 데 역할을 했던 마리 달리. [사이언스 캡처]

콜레스테롤 과다섭취가 고혈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견은 이 흑인 여성 과학자가 없었다면 늦어졌을 수 있다.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초 흑인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운 마리 M. 달리는 콜럼비아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그는 의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췌장과 같은 내장 기관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어떻게 소화를 촉진하는지 등을 연구했다. DNA에 단백질이 어떻게 침투하는지, 콜레스테롤이 어떻게 혈압을 높이는지에 대한 연구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연구실뿐 아니라 캠퍼스 밖에서는 학계에서의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캠페인도 이끌었으며,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도 설립했다.

⑥글래디스 웨스트(89)  

GPS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글래디스 웨스트. [BBC]

GPS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글래디스 웨스트. [BBC]

버지니아주에서 1930년에 태어난 글래디스웨스트는 부모님처럼 담배밭에서 농사를 짓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신 책을 파고들었고, 버지니아 주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1955년 석사학위까지 받고 졸업했다. 전공은 수학. 그가 처음 일을 시작한 건 군 부대였는데 역시 ‘인간 컴퓨터’로서 수식 계산을 도맡았다. 이후 그는 항공 우주학에도 관심을 보이며 명왕성과 해왕성의 궤도가 유사하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이후 지구의 불규칙한 표면을 IBM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도식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GPS 개발에 핵심이 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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