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니벨룽의 반지

중앙선데이

입력 2020.06.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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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28년간 작곡한 필생의 역작으로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이 모티브로 삼으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 헬기들이 베트남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 때 “빰빠라 빰빰” 확성기로 틀어댄 것도 이 오페라의 대표곡인 ‘발퀴레의 기행’이었다. 라인강 깊숙이 묻힌 황금을 세 요정이 지키고 있었는데, 이 황금으로 된 반지를 소유하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난쟁이가 몰래 훔쳐 만든 게 니벨룽의 반지였다. 절대반지의 시조인 셈이다.

뜨고 싶어 조바심 난 초선 151명
절대반지의 저주 가슴에 새겨야

문제는 이 반지에는 저주가 담겨 있어 반지를 끼는 자에게 엄청난 비극이 닥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치열한 반지 쟁탈전 속에서 난쟁이를 포함한 그 누구도 파멸의 운명을 비껴가지 못했다. 반지를 끼는 순간 욕망의 노예가 되면서 전혀 딴사람으로 변했고, 반지는 소유자의 주인이 돼 그를 맘껏 조종했다. 반지를 빼면 저주에서 풀려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은 결코 반지를 버리려 하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반지에 집착한 까닭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도 2주가 지났다. 그중 초선이 151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만나 보면 대부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좌진 9명에 둘러싸여 있지, 유무형의 특혜가 한꺼번에 쏟아지지, 한마디만 하면 장관들도 꼼짝 못 하고 굽신거리지. 곧 상임위를 배정받으면 각종 이익단체의 인사 행렬도 줄을 이을 터다. 대선주자들의 모시기 경쟁에 몸값은 더욱 뛸 테고. 마치 소왕국의 봉건 군주라도 된 느낌일 게다. 처음엔 초심을 잊지 말자 다짐하다가도 시나브로 떠받들리는 데 익숙해지는 게 여의도의 오랜 경험칙이다. 선배들도 다 그랬다.

그러다 보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다. 조명받고 싶고, 뜨고 싶고, 언론의 주목도 받고 싶고. 동료 초선들보다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세지고. 내가 최고라는 자존심부터 인정 욕망, 관종 심리, 경쟁욕에 질투까지. 벌써부터 엄청 초조해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특히 의원이 되기 전에도 튀는 발언이 잦았던 자들은 더욱 안달이 났다. 이 모든 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절대반지인 국회의원 배지를 가슴에 단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때 참을 줄 아는 자가 살아남는다. 4년 뛰는 마라톤에서 처음에 치고 나가는 자는 둘 중 하나다. 끝까지 1등을 하거나, 오버 페이스에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거나. 역대 국회에선 대부분 후자였다. 게다가 이젠 유권자들이 의원보다 훨씬 똑똑해 내공이 빈약한 초선일수록 말이 많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다. 예전엔 정치인은 부고 말고는 신문에 이름 석 자 나오는 게 무조건 이득이랬지만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엔 한번 찍히면 좀처럼 만회하기 힘들다. 신뢰는 거울의 유리 같아 금이 가면 복원이 불가능한 법. 신뢰를 잃으면 진실을 말해도 모두 거짓으로 받아들여지는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할 때다.

지금도 국회에 가면 황금빛 돌 300개가 반딧불이처럼 의원회관 곳곳을 떠다니고 있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151개의 날갯짓이 유독 요란하다. 이들이 권력만 좇는 불나방 신세가 될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히는 촛불이 될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배지의 달콤함이 너무 강렬해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진 않겠지만. 아, 그리고 전철 타는 법은 절대 잊지 마시길. 마침 국회 바로 앞에 9호선 역이 있으니 1년에 한 번쯤은 꼭 타보시길. 그래야 4년 뒤 헤매지 않을 테니.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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