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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권력 창출 공간…동영상 수업은 지식 전달 기능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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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호 26면

[도시와 건축] 학교와 온라인 교육

도시와 건축 삽화

도시와 건축 삽화

역사상 처음 학교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해 보았다. 방송통신대, EBS, 일타강사 등 동영상 강의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해 왔다. 그런데도 학교는 매일 아침 등교하는 관행을 유지해 왔다.

학교는 아이 돌봐주는 기능하고 #또래들 공동체 경험의 장이기도 #실내공간서 한방향 바라보게 해 #앞에 서 있는 교사가 권력 갖게 돼 #익숙한 공간체계 사라지는 시대 #언택트 교육, 근본적 질문 던져 #페북처럼 쌍방향 진화 필요

학교의 기능은 크게 3가지다. 지식 전달, 낮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탁아 기능, 또래들끼리 사회공동체 경험의 장이다. 동영상 수업은 이 중에서 첫 번째 기능을 대체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온라인 수업은 단순히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교실수업과 온라인수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공간구조에 의해서 권력이 창출되는 원리를 살펴보자.

첫째,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이면 권력의 위계가 만들어진다.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돌듯이 주변의 사람들이 한곳을 쳐다보면 그곳에 중력과 같은 힘이 생겨난다. 주변 사람이 모두 한곳을 쳐다보면 나만 혼자 다르게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시선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경청하고 순종하게 된다.

# 처음으로 이 원리를 잘 이용한 분야는 종교다. 문명 초기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높은 신전을 쌓고 그 꼭대기에 제사장이 혼자 올라갔다. 교회에서는 예배당의 의자를 앞을 향해 놓고 앞에는 종교지도자가 위치한다. 이렇듯 시선이 모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권력이 생긴다.

같은 원리로 TV 화면에 보이는 뉴스 앵커맨과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가 많은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두 번째 원리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볼 때 권력이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같은 설교 말씀도 대형교회에서 수천 명과 함께 들을 때의 느낌과 수십 명이 함께 들을 때의 느낌, 온라인으로 혼자들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 사피엔스의 본능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경쟁 종을 물리치고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종교와 같은 공통의 이야기를 믿어서 집단의 크기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사피엔스는 집단에서 이탈될 경우 생존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에 속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천만 명이 봤다고 하면 관객들이 더욱 쏠리게 되고, 시청률이 20%가 넘은 드라마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 본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기네 정당의 지지율이 더 높다고 광고를 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동조자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사람을 모은다. 종교예배나 정치집회가 대표적 사례다.

기독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사람을 모은다. 이때 바깥 경치가 보이는 창문 없이 벽으로 둘러싸인 외부와 분리된 실내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명확하게 나누는 건축 장치다.

공연장도 같은 원리로 콘서트를 함께 보는 팬들은 결속력이 강해진다. 집단에 속하고픈 인간의 본능은 음식문화에서도 나타난다. 냄새가 고약한 발효식품을 함께 먹음으로써 타인과 구분하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킨다. 벽 대신 음식냄새로 내 편과 상대편을 나누는 효과다.

이 같은 공간을 통한 권력창출의 특징을 똑같이 가진 기관이 학교다. 학교 역시 같은 시간 같은 실내공간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한다. 이때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온라인수업이 질적으로 향상된다 하더라도 오프라인수업을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진은 세종학당의 온라인강좌 촬영 모습. [연합뉴스]

온라인수업이 질적으로 향상된다 하더라도 오프라인수업을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진은 세종학당의 온라인강좌 촬영 모습. [연합뉴스]

80년대에는 한 반에 70명 정도이고 전교생이 3000명 정도였다. 70명에게 일주일에 6일 동안 아침저녁 조회를 통해서 학생들이 바라보는 교단에 서 있는 담임 선생님의 권력이 70×6×2=840이라면, 3000명에게 일주일에 한 번 운동장 조회로 훈육을 하셨던 교장선생님의 권력은 3000이다. 3000÷840=3.6 정도이니 교장선생님의 권력은 담임선생님보다 3.6배 정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건축 공간적 방식을 통해서 교권이 만들어지고 학교사회가 유지되고 지식이 전달된 부분이 컸다. 지난 수십 년간 한 반의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담임선생님의 권위도 함께 축소되어 왔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 교권 중 공간을 통해 만들어진 부분은 사라지게 된다.

한 장소에 모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종교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중동의 유목민족인 이슬람교도들은 유럽의 농업사회처럼 정착하고 예배당을 짓고, 시간을 맞춰서 한 장소에 모여 한 방향을 보며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같은 장소에 모일 수 없으니 대신 시간을 자주 맞추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은 매일 다섯 번 시간을 정해서 기도한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 메카를 향해서 하게 규칙을 정했다.

공간개념은 어차피 인간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인식의 산물이다. 따라서 같은 시간에 메카 방향을 향해서 기도할 때 이슬람교도들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공간의 지도가 그려진다. 이런 의식은 다른 많은 사람과 한 방향을 보고 예배드린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방식으로 이슬람은 종교 권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다면 시간이라도 맞추고 한 방향을 보아야 한다는 원리다. 이 원리를 수업에 대입해보자. 온라인 수업을 하면 같은 모니터 영상을 보기 때문에 한 방향을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생방송이 아닌 녹화영상을 보게 되면 시간을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선생님의 권력은 약해진다. 온라인 강의가 아무 때나 필요할 때 들을 수 있느냐, 아니면 생방송이냐에 따라서 선생님의 권위는 차이가 날 것이다.

#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비교를 통해서 또 다른 원리를 배울 수 있다. 싸이월드에서는 내가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배경음악을 깔고 댓글을 달아야 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다른 사람이 만든 콘텐트를 그대로 내 홈피에 포스팅하는 기능이 있었다. 이는 한 개인 홈페이지의 콘텐트 총량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 싸이월드가 일방향이라면 페이스북은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 홈피 공간을 증폭시킨 것이다.

지금처럼 선생님의 강의를 찍어서 올리는 온라인수업은 싸이월드와 같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처럼 하는 온라인수업은 무엇일까. 다른 유튜브 링크를 걸거나, 학생들이 쌍방향으로 콘텐트를 올려도 되는 온라인수업일 수 있다. SNS에 댓글이라는 기능은 방문자를 콘텐트 크리에이터로 만들어 주는 방식이다. 온라인강의에 댓글 기능이나 스케치 기능은 온라인수업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수업을 들을 때 다른 동료들이 함께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원한다면 동시접속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어도 좋다.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통한 새로운 공간화 전략은 계속 개발될 것이다.

동시접속이나 쌍방향으로 모습을 보여 주는 세팅은 학생들이 집에서 동영상 틀고 자는 건 막을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감시가 미래 시대에도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온라인수업을 오프라인수업과 비슷하게 할수록 성공적인 수업일까? 교권이 있어야 교육이 성립되는가? 이는 마치 “건축공간이 만든 권위가 사라진 종교는 어떤 본질적 답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도 연결되어 있다. 익숙한 공간 체계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에 임금이 없으면 나라가 끝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는 임금이 없어도 세상은 굴러갔다. 하지만 임금이 사라진 자리에 때에 따라서 파시즘 같은 독재가 빈자리를 채우는 비극도 있었다. 과거 예술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발터 베냐민 같은 비평가는 예술품의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신 영화라는 새로운 대중예술이 탄생했다.

사진기나 자동차가 만들어진 후에도 사람들은 승마를 하고 그림을 사고판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상위 1% 이하의 부유한 소비자만 누린다. 온라인수업은 저렴한 교육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오프라인학교가 상위 1% 이하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그 1%의 사람들은 더욱더 공고하게 결속돼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가 대학을 평준화시키자 오히려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학교가 프랑스 정·재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문제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학교의 기능 중 두 번째인 탁아기능과 세 번째인 사회공동체 경험은 온라인수업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현재로서는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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