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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시 경제’라며 기업 옥죄기 웬 말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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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호 30면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의 최저점이 보이지 않는다.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었던 국제 유가 및 국내외 증시가 코로나 재확산 우려로 다시 주저앉았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1%로 제시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내외 대부분 경제기관은 마이너스 성장을 예측한다. 수출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고용 사정은 최악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1대 국회 열리자 기업 규제 법안 봇물 #여기선 ‘투자하라’, 저기선 ‘공정’ 압박 #헷갈리는 메시지로 경제 전쟁 이기겠나

경제위기 극복의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기업 규제 법안을 보면 정부·여당이 과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전시 경제’에 걸맞은 위기감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공정경제로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꼭 이런 시기에 기업의 발목을 묶겠다는 발상의 진의가 의심스럽다. 177석 거대 여당의 출현이라는 배경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여당이 ‘공정경제 3법’으로 내세운 개정 법안은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다. 지난달에는 노조법 개정안도 입법 예고됐다. ‘공정’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따져 보면 우려되는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기업 경영권을 제약하고, 기업 활동 및 투자 위축까지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공정위가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전속 고발권 폐지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확대가 골자다.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이 폐지되면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나 검찰의 독자적 수사가 가능해진다. 자칫 사시사철 기업들이 외풍에 시달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상당수 기업은 대주주 일가의 지분을 낮추거나 매각하는 등의 부담을 안게 된다. 거래 안정화 및 품질 유지, 효율성 등을 위한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무조건 ‘사익 편취’의 틀로 재단하는 우(愚)는 경계해야 한다.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도 부작용을 정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모(母)회사 주주가 자(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 감사 선임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상법 개정의 주요 내용이다. 주주 책임 경영 강화라는 명분은 있지만, 외국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 특정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등 대칭적인 경영권 보호 제도가 없는 한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노조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사항이라고는 하나, 가뜩이나 강성인 국내 노조 운동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용자의 방어권을 위해 ‘대체 근로제’를 도입하는 등 보완할 필요가 있다.

기업 규제 법안 상당수는 20대 국회에서 추진됐으나 야당과 재계의 반대로 자동 폐기된 것들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같은 내용의 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고집과 오만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기업들은 현 정부의 ‘반(反)기업 본색’을 읽고 몸을 사린다. 이래서야 정부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구호는 그저 빈말일 뿐이다. 밖으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겠다는 ‘리쇼어링 정책’도 제대로 먹힐 리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6·10 항쟁 기념식에서 ‘평등 경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를 받아 “공정경제 3법 완수로 경제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그제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기업투자 5조8000억원 발굴과 민간 일자리 15만개”를 목표로 내걸었다. 도대체 무엇이 정부의 본심인지 기업들은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렇게 헷갈리는 메시지로, 경제전쟁이 제대로 치러질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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