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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9살의 비극…목숨 건 탈출 뒤 짜파게티만 챙겨 달아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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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난 창녕 아홉살 소녀 A양의 집(오른쪽). A양은 이 테라스에 쇠사슬에 목이 감겨 이틀감 감금생활을 하다 45도 경사진 지붕을 넘어 옆집 테라스로 탈출했다. 위성욱 기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난 창녕 아홉살 소녀 A양의 집(오른쪽). A양은 이 테라스에 쇠사슬에 목이 감겨 이틀감 감금생활을 하다 45도 경사진 지붕을 넘어 옆집 테라스로 탈출했다. 위성욱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쯤 경남 창녕군의 한 빌라. 이 빌라 4층에서 친구 2명과 동업을 하는 D씨(34)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식탁 위에 누군가 뜨거운 물을 부어놓은 컵라면 2개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A양 옆집 테라스로 탈출 #어른도 지나가기 힘든 지붕 타고 넘어가 #배고파 컵라면 2개 먹다 누가 오니 숨어 #집주인 화장실 가자 짜파게티 들고 달아나

 하나는 뜨거운 물만 부어진 짜파게티가, 다른 한쪽에는 누룽지가 들어 있었다. 누룽지 앞에는 앞접시도 놓여 있고 여기에 누룽지가 조금 남아 있었다. D씨는 다른 동업자가 왔다가 잠시 나갔나 하는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 후다닥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려 나와보니 식탁 위에 짜파게티가 담긴 컵라면만 사라진 상태였다.

 D씨는 “그동안 아동 학대사건이 보도되면서 의심은 했지만, 어제서야 그 아이가 우리 사무실 테라스 쪽으로 들어와 컵라면을 먹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 순간에도 컵라면을 챙겨 도망갔을까를 생각하니 저도 애를 키우는 처지에서 참담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난 경남 창녕군 초등학교 4학년 A양(9)은 이날 오후 6시 20분쯤 지나가는 시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불어터진 짜파게티만 먹고 또 8시간 가까이 맨발로 거리를 서성거리다 이상하게 여긴 한 시민의 눈에 띈 것이다. 그사이에 또 배가 고팠던 A양은 이 시민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했고,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빵 등을 사주자 허겁지겁 먹어 주위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최근 계부와 친모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알려진 경남 창녕의 한 초등학생 A(9)양이 지난달 29일 창녕 한 편의점에서 최초 경찰 신고자(왼쪽)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계부와 친모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알려진 경남 창녕의 한 초등학생 A(9)양이 지난달 29일 창녕 한 편의점에서 최초 경찰 신고자(왼쪽)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A양은 자신의 집 테라스에서 이틀간 목에 쇠사슬에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다가 잠시 줄을 풀어준 사이 도망쳤다. A양이 살던 집은 4층인데 테라스에서 45도 경사가 진 지붕을 건너 D씨 사무실 테라스로 들어갔다가 도망친 후 인근 주민에게 발견된 것이다.

 A양은 경찰에서 “평소에 다락방에 생활하며 여러 차례 쇠사슬로 된 목줄에 감금되었다가 집안일을 할 때만 풀어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A양이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감금했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A양이 부모로부터 당했다고 진술한 학대 내용은 충격적이다. 계부 B씨(35)는 프라이팬으로 손가락을 지졌다. 쇠막대기(카본 재질)와 빨래건조대 등으로 때리기도 했다. 친모(27) C씨는 200도 이상의 열을 가해서 금속 등을 접착할 때 사용하는 글루건을 발등에 쏘거나, 쇠젓가락을 불에 달궈 발바닥을 지지는 등 화상을 입혔다는 것이 A양의 진술이다.

 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을 쇠사슬로 묶어 자물쇠까지 채운 뒤 테라스에 묶어두었고 화장실 갈 때나 밥 먹을 때만 풀어줬고, 밥도 하루 한 차례만 줬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은 A양이 발견될 당시 눈 부위에 멍이 들어 있었고, 손과 발에 화상 흔적이 있고, 등과 목에도 상처가 있었던 것을 학대의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또 병원 치료 과정에 오래된 골절, 영양실조와 빈혈 등의 증상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아동 학대 이미지. 뉴스1

아동 학대 이미지. 뉴스1

 B·C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 쇠사슬과 자물쇠, 글루건, 프라이팬, 효자손, 쇠막대기 등도 확보했다.

 경찰은 A양이 2년여 전부터 이런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A양 부모가 경남 거제시에서 창녕으로 이사를 온 지난 1월 이후부터 5개월여 동안 이런 학대가 집중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A양은 2015년 2월 경남의 한 위탁가정에 맡겨졌다가 2017년 1월 친모 C씨와 계부 B씨가 거제로 이사한 2017년 2월부터 함께 살아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창녕=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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