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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목구멍' 이선권, 트럼프에 독설 "선전보따리 안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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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권 북한 외무상이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더이상 선전 보따리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6ㆍ12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자신의 명의로 발표한 담화 ‘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대답은 명백하다’는 제목의 담화에서다. 올해 초 외무상에 취임한 뒤 그가 담화를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선권 북한 외무상 [중앙포토]

이선권 북한 외무상 [중앙포토]

이 외무상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남측 경제인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냐”고 힐난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담화에서 “732일이라는 이 짧지 않은 나날들과 더불어 흘러온 조미관계를 놓고 세계는 무엇을 목격하였으며 력사는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라며 “명백한 것은 두 해 전 이 행성의 각광을 모으며 한껏 부풀어 올랐던 조미(북ㆍ미)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은 오늘날 악화상승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였고, 조선반도의 평화번영에 대한 한가닥 낙관마저 비관적 악몽 속에 사그라져 버렸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외무상에 임명된 뒤 12일 자신 명의 첫 담화 발표 #"각광받던 싱가포르 정상회담, 절망으로 바뀌어" #"싱가포르서 악수한 손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나" #남북관계 단절 나선 북, 군사 행동도 암시

그러면서 “우리 최고지도부와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관계가 유지된다고 하여 실지 조미관계가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있을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며 “지금까지는 현 행정부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정치적 치적 쌓기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 선전감 보따리를 던져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선권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로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는 기념메달과 증서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선권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로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는 기념메달과 증서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 외무상의 담화는 최근 북한이 한국과의 모든 통신선을 차단(9일)하는 등 남북관계 단절에 나선 직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을 장기전으로 규정하고, 정면돌파전을 강조했다”며 “올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로 인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입장을 정하고, 정면돌파전의 일환으로 행동에 나섰을 가능성을 주목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향후 대응을 보아가며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긴장 조치에 나설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 외무상은 한반도 주변의 항공모함이나 스텔스 전투기, 무인정찰기 등을 거론하며, “미국이 말로는 관계개선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정세격화에만 광분해 왔다. 실천이 없는 약속보다 더 위선적인 것은 없다”며 “ 미국의 군사적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며 군사적 행동을 암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 주인”이라 하거나, “뇌까리는” “광분”등 거친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군중 궐기대회를 통해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는 대남 자세와 달리, 이날 담화를 내부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의심이 든다”는 식으로 다소 수위조절에 나선 모습도 보였다. 이날 담화가 미국과의 협상을 종료한다는 선언이라기 보다, 재선 레이스에 접어든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하기 위해 일종의 수위조절을 했다는 평가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 국장이 전날(11일) "미국은 제 집안일이나 잘 돌보라 미국은 남북문제 입다물라. 그것이 대선에 유익할 것”이며 미국 대선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치적 쌓기’에 활용되지 않겠다고 한 건 오히려 미국 대선 가도에서 자신들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단정적으로 남북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달리, 미국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자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대북 적대시 정책 등 정책전환을 주문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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