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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과거 비판했던 당권-대권 분리론…민주당 10년 전 못박아

중앙일보

입력

“당권-대권 분리 주장은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이다. 대통령 선거는 피선거권자라면 국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2005년 열린우리당 4·2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8인의 의장(당 대표) 후보에 오른 당시 유시민 의원은 당권-대권 분리론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선거는 법률적 자격(만 40세 이상)만 갖추면 모든 국민이 피선거권을 갖는데 당 대표라는 이유로 제한할 순 없다는 주장이었다.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문희상(가운데) 의장 취임식에서 한명숙(왼쪽) 의원과 유시민(왼쪽 둘째) 의원이 손을 맞잡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문희상(가운데) 의장 취임식에서 한명숙(왼쪽) 의원과 유시민(왼쪽 둘째) 의원이 손을 맞잡고 있다. [중앙포토]

반면 당시 같은 당 한명숙 의원은 “전당대회가 대선 대리전이 돼선 안 된다”며 당권-대권 분리론을 폈다. 지금은 각 정당에서 당헌을 통해 명문화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는 당권과 대권의 분리론은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온 논쟁적 사안이었다.

민주당 전당대회 핵심변수 된 당권-대권 분리론  

당권-대권 분리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의 8·29 전당대회 구도를 요동치게 만든 핵심 변수가 됐다. 이번에 뽑히는 당 대표가 2022년 3월 대선에 출마하려면 1년 전인 2021년 3월 대표직을 중도사퇴해야 한다. 당권 주자 중 홍영표·우원식 의원은 “대권 주자가 7개월짜리 당 대표가 되겠다는 건 당에 마이너스”란 주장을 펴왔다. 여기에 대선 출마를 공언해온 김부겸 전 의원도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치며 이낙연 의원을 압박하고 나섰다.

오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이낙연(오른쪽)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당 내에서 커지는 당권-대권 분리 요구에 대해 김 전 의원은 대권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여전히 출마 여부를 포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이낙연(오른쪽)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당 내에서 커지는 당권-대권 분리 요구에 대해 김 전 의원은 대권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여전히 출마 여부를 포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당권-대권 분리론 20년의 역사 

당권-대권 분리안은 2000년대 들어 정치권에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이른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통령이 총재(당 대표)까지 맡는 '권위적 보스정치'를 타파하자는 의견이 많아지면서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엔 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에 한해 당권을 내려놓는 식의 제한적 분리였고, 당헌 등을 통해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201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8명의 당권 후보들. 당시 손학규(오른쪽 둘째) 후보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반대했고, 정세균(왼쪽 둘째) 후보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호 의견이 충돌했다. [연합뉴스]

201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8명의 당권 후보들. 당시 손학규(오른쪽 둘째) 후보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반대했고, 정세균(왼쪽 둘째) 후보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호 의견이 충돌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대선 1년 전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당헌을 채택하고 공식화한 것은 2010년 10·3 전당대회부터다. 당시 당권 주자들 사이에선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대한 찬반이 첨예하게 맞섰다. 손학규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대표가 대선의 전초전인 2012년 총선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신임 당 대표가 당권-대권 분리 없이 총선 공천작업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또 다른 당권 후보였던 정세균 당시 의원은 “총선 공천권을 손에 쥐고 의원들을 줄 세워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것”이라며 분리를 주장했다.

찬반이 팽팽히 맞서자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는 결국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가 대권에 도전할 경우 대선 1년 전 사퇴해야 한다”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투표 결과 한 표 차이(13대12)로 찬성 의견이 앞서 당권-대권 분리가 이뤄졌다.

계속된 당권-대권 분리 폐지 주장 

하지만 이후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당권-대권 분리 문제는 전당대회의 단골 이슈로 ‘소환’ 됐다. 당권-대권 분리에 대한 반대 의견도 주기적으로 표출됐다. 박지원 전 의원이 2016년 8월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당권-대권 분리 시한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이자고 제안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6년 8월 박지원 국미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8월 박지원 국미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박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당이 대선 후보급 외부 인사를 포용하기 위해선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12월엔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상임고문이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됐다. 당시 박 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 당은 당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각자 따로따로 나간 것”이라며 당권-대권 분리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대통령과 여당은 일심동체로서 정책을 강력하게 수행해야 한다”며 ‘당·정 일원화론’을 폈다.

십수년 간의 논쟁 끝에 각 정당엔 당권-대권 분리를 하나의 ‘대원칙’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청와대와 정당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총선과 대선 주기를 고려했을 때 20년에 한 번은 같은 해에 선거가 함께 열리는데 당권-대권 분리 없이는 자칫 정당이 사당(私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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