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재의 시시각각

증세는 해야겠는데, 답이 없네

중앙일보

입력 2020.06.1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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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자고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을 때 나는, 대통령 지지율 60%대만큼은 안 돼도 국민 20%는 기꺼이 동참할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99%가 기부 대신 수령을 선택했다. 이른바 ‘문빠’라는 핵심 지지층도 돈 앞에서는 눈을 질끈 감은 것일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돈 따로 지지 따로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애초 무리한 설계, 선의에만 기댄 희망 고문, 우왕좌왕 퍼주기가 빚은 참사(?)였다.

세금을 올리겠다고 공약하고도
집권 성공한 스웨덴에서 배우라
비결은 “국민 좋은 데 쓴다”는 신뢰

2차 지원금 얘기가 솔솔 나오는데 벌써 궁금하다. 과연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일지. 나는 못한다는 쪽이다. 한번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했으니 다시 50%만 주기도 어렵다. 나머지 50%의 튀어나올 입을 어찌 견디랴. 금액을 줄일 수도 없다. 10조원 넘는 돈을 또 만들기는 언감생심이다. 이번엔 “기부”에 호소할 수도 없다. 퇴로까지 줄줄이 막힌 셈이다. 어디 재난지원금뿐이랴. 쓸 곳은 태산인데 들어올 곳은 없다.

남은 방법은 하나, 증세다. 분위기는 괜찮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며 군불을 지폈고 학계·경제계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증세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지지층을 믿고 섣부른 증세론에 올라탔다간 뒷감당이 어렵다. 조세 저항에 부딪혀 정권을 뺏기고 만년 야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겁이 안 날 수 없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이 좋은 예다. 라르스 다니엘손 전 주한 스웨덴 대사는 7년 전 한 강연에서 “스웨덴은 세금을 올리겠다고 해도 집권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고 했다. 사실이다. 1994년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증세 공약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세금을 올리되 더 좋은 보육과 교육, 실업자·노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약속했다. 사민당은 그해 1946년 이래 가장 큰 승리를 거뒀다. 2014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당시 8년째 정권을 뺏겼던 사민당은 부가가치세 인상, 우파가 폐지했던 부유세와 부동산세 부활 등을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 정권 재탈환에 성공했다.

비결은 신뢰와 노동이다. 다니엘손 전 대사는 “스웨덴 국민은 정부가, 공공분야가 국민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대신 놀면서 세금 타 먹는 건 경멸한다. 그는 “스웨덴 국민은 ‘일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동과 신뢰, 증세를 통한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키워드다.

물론 섣불리 흉내 낼 일은 아니다. 표와 진영을 갈라 세금을 걷고 내 표, 내 진영을 위해 세금을 쓰는 정치로는 언감생심이다. 당장 편 가르기, 부자 증세 프레임부터 벗어나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때 “(증세는)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임기 내 서민 증세는 없다”고 약속했다. 여당은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존경 과세, 명예 과세”라고 둘러댔지만, 누가 모르랴. 그게 어르고 뺨치는 짓이라는 걸. 이래서야 세금 더 내는 국민도 명예롭지 않고 혜택받는 국민도 떳떳하지 않다.

게다가 부자 증세만으로는 봇물 터진 재정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주택 보유세가 지난해보다 7600억원(종부세 4700억원+재산세 29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10년을 더 걷어야 겨우 국민 50%에 재난지원금 한 번 더 줄 정도다. 법인세는 그렇게 세율을 올렸음에도 올 4월까지 작년보다 되레 3조2000억원(12.9%↓)이 줄었다.

결국 답은 보편 증세, 국민 증세다. 부가가치세를 올리거나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던 열 명 중 네 명(38.9%)의 국민에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 둘 다 해야 할 수도 있다. 편 따로 세금 따로 없는 세상을 약속하고 실천해야 비로소 가능할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돈 따로 지지 따로 문빠만 믿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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