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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전경련 "대기업 벤처캐피털 허용"…공정위 "부작용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주도 벤처 캐피탈 CVC 활성화 토론회' 참석자들. 사진 연합뉴스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주도 벤처 캐피탈 CVC 활성화 토론회' 참석자들. 사진 연합뉴스

“창업 초기 이후엔 국내 자본 투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스타트업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호소하자 “국내 대기업도 구글처럼 벤처 투자하게 해 달라”고 기업(전국경제인연합)이 화답했다. 여기에 “그건 안전장치”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우려했다.

대기업의 벤처투자사 설립에 대해 11일 국회에서 오고 간 논의 핵심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이원욱·김경만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활성화’ 토론회에서다.

코로나19가 살린 ‘대기업 벤처캐피털’ 논의

벤처캐피탈(VC)은 벤처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로, 국내 산업 분류에서 ‘금융업’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 지주회사는 금융업을 소유할 수 없다(금산분리). 그래서 지주사인 SK나 LG, GS, 롯데 등은 산하에 VC를 둘 수 없다.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스타트업이 투자받지 못하는 돈 가뭄이 심해지자 대기업 CVC 논의가 되살아났다. 지난 1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나온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도 이를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토론회에는 여당의 이낙연·김태년·김진표 의원이 참석해, “금산분리 취지를 살리며 벤처투자를 활성화하자”고 축사했다. 주최자인 김병욱 의원은 “금산분리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새로운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원욱 의원은 “과거 패러다임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두 의원은 대기업 CVC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 개원 직후 각각 발의했다.

이낙연 코로나19 극복위원회 위원장이 토론회에서 김병욱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이낙연 코로나19 극복위원회 위원장이 토론회에서 김병욱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뉴스1

“대기업, 국내 벤처투자 막혀 해외로” 

발제를 맡은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 세계 VC의 30%가 CVC”라며 구글·알리바바·텐센트 등 거대 기업의 CVC가 투자를 주도하는 미국·중국과 달리 산업자본의 벤처 투자가 적은 국내 현실을 지적했다. “국내 CVC가 허용 안 돼 대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다”라고도 했다.

김 교수는 CVC를 세워야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VC 운용 기간은 10년 안팎인데 대기업 임원 임기는 2~3년”이라며 “CVC 없이, 현재 대기업 의사결정이나 실적 관리 구조에서는 벤처 투자가 어렵다”고 했다.

스타트업 “배민 사줄 만한 국내 자본 없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대기업 스타트업 투자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스타트업이 강력하게 원하는 제도”라고 했다. 최 대표는 “창업 초기에만 정부 자금 등 투자가 이뤄지고,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이상)이나 직전 단계로 가면 국내 자본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창업 선순환이 이뤄지려면 국내에 대규모 펀드가 있어야 한다”며 “배달의민족이 해외에 인수된 것도 5조원 짜리 기업을 사줄 수 있는 구조가 국내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환익 전경련 상무는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 수명이 짧아져, 연구개발(R&D)의 기존 모델이 한계를 만났다”며 대기업 CVC 허용을 주장했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VC는 단순한 자금 중개가 아닌 신성장동력 산업”이라며 “대기업 CVC 허용은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총수 일가 위한 악용 우려도'

대기업을 감독하는 공정위는 CVC가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편법 승계나 계열사 부당 지원에 CVC가 이용될 가능성은 전부터 제기돼 왔다. 토론자로 나선 이승규 공정위 지주회사과장은 “벤처 투자는 미래가 불확실한 사업에 대한 것이어서, 이를 통해 부당지원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기존 법과 규제로 (부당지원) 판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벤처 투자의 특성상, 투자 실패인지 의도한 특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과장은 대기업이 CVC가 없이도 투자할 수 있다며 “GS홈쇼핑과 네이버 등은 CVC 없이도 사내 벤처투자팀이 적극 투자를 이끌고, 외국 기업 애플·페이스북도 CVC가 없지만, 적극적으로 투자와 인수 합병을 한다”고 했다.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대기업 CVC를 허용하려면 자금 조달과 투자,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내용 등을 공정위에 신고하거나 공시하는 사전 규제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는 상호 반박 없이, 각 토론자의 순차 발언으로 끝났다.

한편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금산분리의 원칙을 허물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심화에 악용될 수 있는 지주회사의 CVC 허용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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