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명가 출신 대금산조 무형문화재 보유자 김동표씨 별세

중앙일보

입력 2020.06.11 18:14

업데이트 2020.06.11 19:43

지난 10일 타계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김동표 명인. [사진 문화재청]

지난 10일 타계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김동표 명인. [사진 문화재청]

국악 명인 가문 출신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급에 일생을 바친 김동표 보유자가 10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79세.

“소리가 듣는 이의 오장육부를 쑤실 정도로 곰삭아야 한다.”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고인이 추구하는 대금 소리를 표현한 게 이랬다. 여기엔 우리 국악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 유랑극단 악사로 일하면서 소리를 다듬어 마침내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기까지의 한과 자부심이 배어있다.

고인은 1941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전북 전주로 옮겨 전주북중을 다니다 중퇴하고 16살에 대금을 시작했는데 이를 이끌어준 게 맏형 김동준(1928~1990)이다. 나중에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鼓法)의 보유자가 된 김동준은 전주 국악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터울이 꽤 나는 동생 둘을 대금에 입문시켰다. 셋째 김동진(1937~1989)과 넷째 김동표다.

이들은 여성국극단 악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대금산조 명인 강백천(1898∼1982)의 제자로 들어간다. 전남 남원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한 강백천은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된 대금산조의 초대 보유자다. 강백천이 구현한 ‘시나위 더늠’은 박종기의 ‘소리 더늠’과 함께 대금산조의 두갈래 큰 흐름을 이룬다. 대금산조는 장구 반주에 맞추어 대금을 연주하는 독주 형태의 음악으로 가락에 리듬과 장단을 더하는 장식적인 연주법과 즉흥성이 특징으로 꼽힌다.

무형문화재 대금산조 보유자였던 강백천 선생이 생전 후계자 김동표씨와 함께 한 모습. [중앙포토]

무형문화재 대금산조 보유자였던 강백천 선생이 생전 후계자 김동표씨와 함께 한 모습. [중앙포토]

김동표는 형들이 차례로 타계한 뒤 93년 ‘대금산조’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부산에서 백천국악원을 차리고 보급에 힘썼으나 10여년전부터 지병으로 인해 크게 활동하진 못했다.

고인의 육촌이자 역시 대금 연주자인 원장현씨는 “1960년대 여성국극이 명맥을 유지할 때 진경여성국극단, 우리국극단, 국극사 등과 어울려 전국을 다녔다”고 고인의 활약을 돌이켰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1970년대 이후 부산 동래 온천장을 중심으로 풍류객들의 활동무대가 만들어질 당시 강백천 선생을 이어 이름을 날리신 분”이라면서 “다만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후엔 건강 문제 등으로 활약을 많이 못하신 게 아쉽다”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말례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부산시 동래구 광혜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3일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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