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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관리 확 바뀔까…대법 "자살예측 부사관 사망, 軍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제666기 해군병 수료식'에서 해군병이 경례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연합뉴스]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제666기 해군병 수료식'에서 해군병이 경례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연합뉴스]

군 장병 관리에 변화가 예상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입대 후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 결과가 나온 장병의 관리가 소홀했다면, 그 장병의 극단적 선택엔 군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1·2심에서 "세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정으로 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강화된 관리 기준을 적용했어도 사고를 막기 어려웠다"며 유족이 패소했던 판결을 뒤집은 것입니다.

"軍책임 없다"는 1·2심 뒤짚어, "장병 자살방지 의무 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군대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 행동이 통제되고 집단행동이 중시되는 등 자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군은 자살 가능성이 확인된 장병에 대해 자살을 방지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군의 장병 관리 의무와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것입니다.

해군 부사관 사건의 재구성

2012년 A씨는 해군 부사관으로 임관했고 2013년 전투함에 배치받았습니다. A씨는 2012년 교육사에서 인성검사를 받았는데 '부적응, 관심, 자살예측'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소대장 B씨는 검사 결과 당일 A씨와 면담했고,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해 검사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A씨는 B씨에게 '누구나 한번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살을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지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지 않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B씨는 A씨를 'A급 관심장병(진단 등이 필요한 자)'이 아닌 'B급 관심장병'으로 분류했고, B씨의 상사 C씨도 A씨의 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채 두 차례 면담 뒤 A씨를 'C급 관심장병'으로 분류했습니다.

B급 장병은 '개인적인 고민이 있지만 사고발생 우려는 없는자'를 C급 장병은 '신상에 문제점이 없는자'를 뜻합니다. 이렇게 인성검사에서 자살이 예측됐던 A씨에 대한 군의 1차적 관리가 마무리됩니다. 이후 A씨도 군 생활에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2013년 1월 인성검사에선 '양호'를, 그해 3월 스트레스 및 우울증 검사에선 '특이사항 없음' 판정을 받습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월 10일 논산훈련소 훈련병들이 연무읍 연무문화체육센터 사전투표소장으로 들어가기 전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기사와 사진은 상관 없음.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월 10일 논산훈련소 훈련병들이 연무읍 연무문화체육센터 사전투표소장으로 들어가기 전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기사와 사진은 상관 없음. [연합뉴스]

"지휘관 면담아닌, 전문가 진단 받았어야"

하지만 두 달 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A씨는 2013년 5월로 예정된 해군 기량경연대회를 준비하다 상사의 질책을 받았고, 그 다음 날 전투함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A씨의 동료들이 모두 놀랄만큼 예상하기 어려운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A씨의 심리 부검을 한 감정인은 "A씨가 전투함으로 전입온 뒤 스트레스를 내적으로 억압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A씨의 성향상 부대 지휘관이 아닌 외부 전문가와 상담했다면 부대 적응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 밝혔습니다. 또한 첫 '자살예측' 결과 뒤 두번째 인성검사는 "이미 익숙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 신뢰성이 낮다"고 했습니다. 처음 나온 결과에 집중해 해군이 A씨를 추적 관리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1·2심과 대법원의 서로 다른 판단 

1·2심은 ▶A씨가 자신의 어려움을 주변에 토로하지 않았고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지 않았으며 ▶경연대회의 스트레스 상황이 지나치지 않았으며 ▶군에서 여러차례 면담이 이뤄졌다는 등의 이유로 군의 책임이 없다고 봤습니다. 1차 인성검사 결과가 누락돼 A씨가 'A급 관심장병' 관리를 받지 못한 측면은 있지만, 그것ㅂ만이 A씨 죽음의 원인이라 보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주심 재판관을 맡았던 김재형 대법관. [중앙포토]

이번 대법원 판결에 주심 재판관을 맡았던 김재형 대법관. [중앙포토]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첫번째 인성검사에서 A씨에게 '자살예측' 판정이 나왔다면 군에서 A씨를 즉시 정신과 군의관에게 진단토록 하거나, 필요시 입원 또는 외래 치료를 시켜야 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군은 자살이 예상되는 장병의 자살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며 "자살 사고가 예측가능했고 그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는 배상 책임을 진다"고 했습니다. 자살 고위험군 장병에 대한 군의 철저한 관리를 주문한 것입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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