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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 식당 맛 형편없다"…블로거의 이 글 명예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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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4)

사이버 명예훼손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실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하고, 비방과 악의적으로 타인을 가해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 Pixabay]

사이버 명예훼손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실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하고, 비방과 악의적으로 타인을 가해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 Pixabay]

말보다 카카오톡으로 하는 대화가 더 흔한 시대입니다. 메신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하면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할 수 있고, 기록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왜곡된 정보나 의도치 않은 사생활이 순식간에 유포될 위험도 있지요. 최근 20대 여성 연예인이 악성 댓글을 견디지 못하고 연이어 극단 선택을 했던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사이버 명예훼손을 보다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얼마 전 양형위원회도 명예훼손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새로 마련했지요. 그간 법원에서는 악성 댓글 등 사이버 명예훼손범죄(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에 대해 낮은 벌금형을 선고하는 추세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초 배우 S씨를 2년간 괴롭힌 30대 여성에게 징역 5개월의 실형이 선고되는 등 처벌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고 모두 사이버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실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합니다. 단지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비방의 목적도 있어야 합니다. 악의적으로, 타인을 가해할 목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맛집 블로거가 00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후 ‘00식당은 음식 맛이 형편없다’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고 칩시다. 00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예훼손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음식 맛은 블로거의 주관적인 평가이기 때문이지요. 반면 ‘00식당 음식이 1시간이나 늦게 나왔다’라고 올렸다면 어떨까요. 식당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은 식당에 대한 평가를 깎아내리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게다가 1시간이나 늦었다는 것은 구체적 사실입니다. 블로거는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을까요. 만약 음식이 제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거가 악의적으로 게시한 것이라면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물론 00식당 주인이 문제 삼지 않으면 처벌될 일이 없겠지요. 반면 00식당 음식이 실제로도 늦게 나왔다면 처벌되기 힘들 겁니다. 음식 나오는 시간은 00식당을 이용하려는 다른 손님에게도 중요한 정보입니다. 블로거가 제공한 정보는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것이라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명예훼손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선고됐는데요. 사실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A씨의 딸 B양과 C는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A씨는 C가 B를 따돌렸다고 주장하며 초등학교에 학교폭력 신고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C의 폭력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C에게 봉사 및 교육을 명했지요. A씨는 자신의 카카오톡 계정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라는 글과 주먹 모양의 이모티콘을 올렸습니다.

1심과 2심은 위와 같은 A의 상태 메시지 게시가 피해자인 C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한 구체적인 사실을 드러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봤습니다. 상태 메시지를 토대로 C가 학교폭력사건에 연루되거나 조치를 당했음을 알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9도12750 판결).

대법원은 A가 게시한 상태 메시지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는데요,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는 ‘학교폭력’이라는 용어에 ‘죄지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인 ‘범(犯)’을 덧붙인 것입니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통칭하는 표현일 뿐 C가 ‘학교폭력범’으로 지칭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A가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도 실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접촉금지’라는 표현 역시 ‘접촉하지 말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지, ‘접촉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뜻으로까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요. 대법원은 A의 상태 메시지가 C의 학교폭력 사건이나 구체적인 사실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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