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연 논설위원
‘북한 핵? 코로나바이러스? 무엇이든 걱정 마세요. 우리는 세계 유일의 문재인 보유국입니다. 문 대통령님이 위기를 뚫고 헤쳐나가는 걸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다’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그러면 핵 폭탄 몇 개랑 맞먹나요?’라거나 혹은 ‘문재인 보유국이어서 너무나 다행’이란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여야 ‘받고 더블로’ 돈 살포 경쟁 #기본소득 도입의 진짜 이유 뭔가 #하려면 복지 구조조정 먼저 해야
친문 인사들 사이에선 요즘 ‘월광 소나타, 달빛 소나타가 문 대통령 성정을 닮았다’는 헌사가 유행이라고 한다. 지난달 어느 검사가 세계적 소프라노의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를 문 대통령에게 바치는 노래인 양 소개한 뒤 ‘문광(文光) 소나타’로 번졌다. ‘북조선이나 남조선이나 조선은 하나다. 북에는 인민의 태양이 계시고 남에는 국민의 달님이 계신다’로 이어진 바로 그 문광(Moon Light)이다.
문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이다. 통상 이맘때면 권력 무상에 정치 무상을 입에 달고 사는 청와대였다. 무슨 ‘왕재수’ 비슷하게들 꺼려 스산한 분위기에 영이 통 서질 않았다. ‘절간 같다’던 대통령도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고공 인기에 힘입어 장악력을 오히려 높여가는 중이다. 역대 청와대와 다른 건 하나 더 있다. 역대급 돈 풀기다. 덕분에 나랏빚이 반년 새 100조원 넘게 늘었다. 빛의 속도다.
둘 사이에 정확하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이 지긋한 분들의 삼삼오오 술자리에서도 ‘이명박근혜’ 욕이 훨씬 잦아졌단 얘기가 많다. ‘나라가 얼마든지 퍼줄 수 있었는데, 자기들 패거리만 뜯어먹기에 바빠 돈 없다고 생떼를 썼다’는 흥분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만고불변 진리다. 재난지원금 효과를 총선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문제는 이제부터가 본게임 시작이란 점이다. 보수 야당은 곧 기본소득 정책화를 위해 경제혁신위를 띄운다고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야당이 맞다. ‘문재인 야당’조차 ‘국가채무비율 40%’로 정부를 혼냈다. 아마도 우리 여당은 어떤 식으로든 ‘받고 더블로’ 달릴 게 분명하다. 국책연구소는 ‘4차, 5차 추경’ 군불을 때고 여권은 2차 재난지원금을 입에 올렸다. 퍼주기 경쟁은 더 무책임한 쪽이 이기게 돼 있다.
재원은 그렇다 치자. 정말로 궁금한 건 기본소득을 하려는 이유다. 여러 나라가 관심을 보인 까닭은 지나치게 번잡하고 효율성이 떨어진 복지 시스템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게 줄줄 새는 비용과 모럴 해저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린 아니다. 곧 닥칠 대선이 먼저다. 그러니 보수 야당도, ‘미래지향적’이라고 자랑하는 안철수당도 미래는 얘기하지 않는다.
코로나 위기 앞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거야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다. 선거용이라고만 몰아세우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이든 기본소득이든, 이름이 뭐가 됐든 평소에도 먹기 어려운 소고기를 사먹는 용도로 쓰여 소고기 값을 올린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대통령은 ‘지원금으로 소고기 샀다는 보도에 뭉클했다’지만 소고기 못 먹는 게 코로나 피해는 아니다.
로마의 몰락 하면 흔히 거론되는 쇠퇴 전환점이 아드리아노플 전투다. 게르만족 대이동으로 이어진 이 전투에서 로마는 고트족에 완패했다. 황제가 전사했다. 하지만 글렌 허버드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강대국의 경제학』에서 과도한 재정 지출과 경제 불균형에 주목했다. 명나라든, 스페인이든 세계를 주도한 역사상 제국들은 이민족이 아니라 늘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패턴이 같다. 지금 남미가 그렇고, 남유럽이 그렇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우린 이대로 괜찮냐’고 물어야 한다. 정치엔 없다. ‘국민이 원한다’며 너도나도 ‘돈 살포가 정답’이라고 왼쪽으로 빨리 달리기 경쟁이다. 세상 참 희한하게 돌아가는 웃기는 정치다. 국민은 웃는다. 공돈 싫어할 사람이야 누가 있겠나.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