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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언론의 자유 무시한 여권의 ‘가짜뉴스’ 규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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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체 누구를 위한 법률 개정인가. 거대 여권이 언론의 자유를 구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제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을 명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가짜뉴스, 혹은 허위 보도로 피해를 볼 경우 언론사에 금전적 손해배상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악의적 보도’ 구실로 징벌적 배상제 발의 #손해액 3배 물려…언론에 재갈 물리는 꼴

정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에서 문제가 된다. 우선 ‘악의적’의 판단 주체 및 기준이다. 최종 판정은 법원의 몫이겠지만 정부나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이해당사자가 미리 결정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해관계에 따라 비판과 악의의 경계가 모호해 민주주의의 기초인 언론·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독소조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언론에 적용하는 것 또한 논란거리다. 우리 법률도 2011년부터 하도급 거래·환경보호법·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실손액의 3배 이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 왔지만 언론 분야에 대한 도입은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정 의원은 2013년 19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지만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을 발의한 정 의원의 감정적 접근도 논란을 낳고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생각 같아서는 30배, 300배 때리고 싶지만 우선 없던 법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선 만들고 봅시다”라고 말했다. 일단 법부터 제정하고 사후 예상되는 논란에 관해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국가 운영의 뼈대인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의 사려깊고 책임 있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여권에 불리한 보도를 봉쇄하겠다는 ‘악의’가 내포된 것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언론의 소임은 언제나 막중하다. 오보를 시정하고, 사건 당사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언론 보도와 관련해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도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잘못된 보도가 있을 경우 정정보도를 요청할 수 있고, 언론사·기자를 상대로 법적 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하려는 것은 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에 무거운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현 정권은 예전에도 언론 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가짜뉴스를 거르지 못하는 플랫폼 사업자에 10% 과징금을 부여하려 했다가 논란 끝에 폐기한 적이 있다. 정 의원의 이번 발의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177석 과반 의석을 확보한 21대 국회에서 더 세게 밀어붙이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 민주주의는 비판을 양분 삼아 성장한다. 감시당하지 않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다. 여권은 언론중개법 개정안을 즉각 거둬들여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