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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북 전단 이유로 탈북민 비하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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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면서 북한은 물론 우리 내부의 탈북민 공격과 비하가 도를 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비롯됐다. 김여정은 탈북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남조선 당국은)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측의 독기 어린 막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0일 노동신문에 소개된 군중 집회에선 “민족 반역자이며 인간 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 죽이자”는 살벌한 구호까지 등장한다. 북측의 선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탈북자들을 향한 일부 여당 의원과 친북 단체의 힐난은 귀를 의심케 한다. ‘대북 전단 살포 제한법’을 발의한 김홍일 의원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의 순수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북 삐라는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북 전단 살포 단체들의 구체적 비리 혐의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이처럼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발언은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이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측근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전단 살포를 언급하며 “그 나라가 싫어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고 하면, (북한을) 자극하는 문제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만 안달이 난 여권 일각에서 탈북민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탈북민들은 잔혹한 북한 정권의 박해와 인권 유린을 피해 도망쳐 나온 사실상의 난민이다. 북한을 ‘그 나라’로 지칭한 것도 문제다. 그렇다면 탈북민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란 말인가. 이들은 북한 독재정권이 북녘땅을 무단으로 점거한 탓에 우리 국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익을 누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 땅의 어느 누구와도 똑같은, 우리 국민이다.

게다가 현 정권은 대북 전단을 뿌리는 탈북민들을 남북관계를 망치는 방해꾼으로 폄하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북 전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남북한의 실상을 일깨워주는 데 역할을 해 왔다. 실제로 탈북자 중 많은 이가 “대북 전단을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고 토로한다고 한다. 그러니 대북 전단을 구실로 탈북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전단 살포의 실효성과 후유증을 두고 논쟁을 벌일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겠다는 충정에서 이를 추진해 온 탈북자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건 민주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행태다.

게다가 정부는 어제 대북 전단을 뿌려 온 탈북민 단체 2곳을 고발하고 설립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두 단체가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법은 남북 간 물품 거래와 주민 간 접촉을 돕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런 법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규제한다는 것도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지만 북측의 요구 직후 바로 관련 단체를 고발하겠다는 건 영 모양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