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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집 할머니 계약서엔 "월10만원 줄테니 후원금 관여말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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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나눔의 집을 혼동하는 분이 많습니다. 정의연과 다르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의 후원금 집행 문제를 내부 고발한 김대월 학예실장은 10일 내부 고발 약 한 달 만에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실장은 “국민에게 나눔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차분하게 설명하고 싶었다”며 “더는 기댈 데가 없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나눔의 집, 국민 품으로 되돌려달라” 靑 청원 

김 학예실장 등 내부고발 직원들은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나눔의 집을 할머니와 국민 품으로 되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부처가 사태 해결에 나서달라”는 게 이 청원 요지다.

나눔의 집 내부 고발 직원들이 공개한 2001년 나눔의 집 원장 스님과 할머니 9명이 체결했다는 약정서. [나눔의 집 내부고발 직원들 제공]

나눔의 집 내부 고발 직원들이 공개한 2001년 나눔의 집 원장 스님과 할머니 9명이 체결했다는 약정서. [나눔의 집 내부고발 직원들 제공]

김 학예실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후원금 관련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할머니들이 나눔의 집 측에서 월 10만원을 받는 대신 후원금 일체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약정서에 지장을 찍어야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내부 고발 직원들이 공개한 약정서에는 “2001년 1월부터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월 10만 원을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할머니들은 나눔의 집 후원금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을 약정하고 맹세한다”는 문구가 나온다. 당시 할머니 9명이 본인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었다. 김 학예실장은 “이 약정서를 계기로 2001년부터 월 10만원씩을 (할머니에게) 줬는데 그마저도 2009년부터 중단됐다”고 말했다.

김 학예실장 등은 청원에서 이 약정서를 언급하며 “할머니들은 본인이 원하는 나들이나 소풍 한 번 못 갔지만 나눔의 집 주최 행사에는 언제든지 나가야 했다. 심지어 병원비·간병비·생활물품까지 할머니 개인 돈으로 지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국민이 보내주신 성원과 후원으로 더 행복하고 풍족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 기회는 이사진과 운영진에 의해 박탈당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내부 고발 직원들은 “나눔의 집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생활 안정과 복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며 “현금자산만 72억원이 쌓여있음에도 20년간 할머니들을 돌보는 간호사는 단 1명이었다. 이는 할머니가 10명 넘게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이 기부금품법에 따른 등록도 없이 20년 넘게 118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집했고, 정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목적사업을 삭제한 이후에도 후원금을 모집했다”며 기부금품 모집행위와 후원금 사용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무부처인 경기도와 광주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나눔의 집 법인이 무법천지일 수 있었던 것은 관리·감독 기관인 광주시와 경기도 그리고 수사기관 방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인 이사진은 모든 책임을 시설의 운영진에게 떠넘기고 있다. 나눔의 집 사태에 가장 책임이 있는 자들이 반성도 없이 이 사태가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려 다시 후원금의 주인행세를 하는 없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김 학예실장 등 직원 7명은 지난 5월 나눔의 집 운영진이 막대한 후원금을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현금과 부동산으로 적립해 노인 요양사업에 사용하려 한다며 국민신문고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안신권 전 소장과 김모 전 사무국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후 경기도와 광주시가 특별점검에 나서 후원금 부적정 사용과 법률 미준수 부분을 다수 확인했다. 경찰은 안 소장과 김 전 사무국장의 배임 혐의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정의연에 이어 대표적인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로 꼽히는 나눔의 집에는 현재 할머니 5명이 생활하고 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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