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돌아가신 부모님을 '꽃대궐'에 모신 어느 부부

중앙일보

입력 2020.06.10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44)

6월이지만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이 끼어 음력으론 4월이다. 앞산 중턱에 동네 사람들이 분주하다. 포클레인도 와서 일하고 있다. 한 집안의 형제들이 모여서 날 잡아 조상 묘 이전을 하는 중이다. 백 년 이전의 세월 언저리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조상이다. 지금쯤이면 굳이 파나 안 파나 흙이 되어 있겠지만, 형식상 체면상 다 파서 확인 후 흙 한 줌 갖고 가서 새로 조성한 땅 조상님 자리 또는 납골묘에 모신다. 산에서 산으로 이사 다니는 것이다. 이곳 안동은 올해 산불이 크게 나서 산속에 있는 많은 묘가 훼손되었다. 아마도 윤달을 이용하여 조상들의 묘지 이전과 합장하는 행사를 많이 할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지인 부부는 이사 다닐 때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다닌다. 그들은 이북에서 내려와 고생만 하다 일찍 떠나신 부모님을 늘 그리워했다. 어느 해 부모님 묘가 모셔져 있던 산주가 바뀌면서 이장해달라는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굳이 산에서 또 산으로, 납골당으로 보관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그래서 화장을 한 뼛가루를 집 마당 한쪽에 묻고 꽃밭을 조성했다. 죽을 때까지 살 것 같았던 그 주택이 도시계획에 수용되어 이사를 해야 해서 그 흙을 조금 퍼서 함께 이사를 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두 번째 집도 수용되어 이번이 세 번째 이사한 새집이다. 부모님 덕분에 이사 가는 곳마다 좋은 땅이 되어 값어치가 오른다며 농담을 한다. 이제는 부모님 모시고 전국 곳곳 살아보기가 꿈이 되었다.

호주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묘지였다. 그곳으로 자주 소풍을 갔다. 꽃동산 같은 아름다운 공원이 길목 여러 곳 조성되어 있고 참 아름다웠다. [사진 Pixabay]

호주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묘지였다. 그곳으로 자주 소풍을 갔다. 꽃동산 같은 아름다운 공원이 길목 여러 곳 조성되어 있고 참 아름다웠다. [사진 Pixabay]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이사 다니니 참 좋다고 한다. 이사하기 전날이면 흙만 한 삽 퍼 문종이에 곱게 싸서 옆 좌석에 모시고 가면 된다. 이사를 하는 터 가장 햇살 좋은 마당 한쪽에 묘지를 조성한다. 묘지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반 평도 안 되는 쉼터이다. 부모님 닮은 넓적한 돌을 한쪽 마당에 앉히고 나무 한 그루와 예쁜 꽃들로 꾸미면 끝이다. 몇 년이 지나면 마당의 가장 아름다운 꽃동산이 되어 있다.

남편과 투덕거리고 속상할 때 꽃밭을 가꾸며 푸념을 하면 어른들의 위로가 들리는 듯하고 편안한 마음이 된단다. 내 집 근교에 사는 지인도 마당 한켠에 돌비석을 세운 꽃동산을 만들어 놨는데 나는 얼른 알아볼 수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하는 두 부부의 일상을 보면 경외심이 절로 든다. 어른과 노인의 차이를 느낀다. 부모님이 가까이서 늘 지켜보니 행동이 그런 거 같다. 돌아가신 그들은 생전에도 얼마나 존경받는 삶을 사셨을까 부러워진다.

삶과 죽음은 자리를 비켜 앉는 것 같은 소소로운 일인데, 우리는 너무 큰 두려움을 안고 살게 분위기 조성을 한다. 우리의 묘지문화는 너무 어둡고 침침하다. 부모님이 생각나 한번 방문하려면 큰맘을 먹고 다녀와야 한다. 거기에 가는 날이 또 정해져 있어 한꺼번에 움직이니 차가 밀리고, 평소에 아무리 자주 들렀어도 전 국민이 방문하는 그 날 안 가면 불효자가 될 것 같은 마음이다.

아들네가 사는 호주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묘지였다. 그곳으로 자주 소풍을 갔다. 꽃동산 같은 아름다운 공원이 길목 여러 곳 조성되어 있고 참 아름다웠다. 가끔 쉼터 같이 놓인 의자 밑에 30㎝ 돌 모양의 작고 소박하게 누운 비석은 더욱 생경했다. 또한 집 근처에 있던 장례식장도 인상 깊었다.

어느 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초록색 옷을 입고 모여 있길래 ‘무슨 행사를 하는데 옷을 저리 맞춰 입었나’ 하니 장례를 치르는 중이라 했다. 평소에 고인이 좋아하던 색상의 옷을 입고 모여서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저쪽세상으로 떠난 사람을 위해 슬피 울지 않고 차분하게 보내는 장례문화다. 윤달, 잠든 조상들이 어수선한 달이다. 다시 산에서 산으로 이사 다닐 많은 영령의 명복을 빈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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