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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마저 생산라인 세운다···‘철없는 코로나’에 철은 죽을 맛

중앙일보

입력

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에서 생산한 열연 코일. 뉴스1

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에서 생산한 열연 코일. 뉴스1

지난 9일은 철강 업계의 생일인 '철의 날(6월 9일)'이었다. 기념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20년 만에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차원이지만, 요즘 철강업계 분위기도 반영됐다. 글로벌 수요 부진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잇단 감산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루 전인 8일 포스코는 오는 16일부터 일부 생산설비를 멈출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지난 2월 시설 보수에 들어간 광양 3고로의 재가동 시기도 미뤄졌다. 사실상 감산이다. 포스코의 감산은 1968년 창사 후 IMF 외환위기(19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이후 세 번째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 1일부터 당진제철소 전기로 열연공장을 닫았다. 올해 들어 사실상 수주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역시 2005년 공장 가동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정은미 한국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수요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생산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고로(용광로)는 한번 멈추면 다시 켜는데 너무 힘들기 때문에 생산량을 최소로 유지하며 비용 절감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스코·현대제철은 국내 조강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1·2위 업체가 잇따른 공장 가동 중단을 선언한 이유는 자동차·조선·기계·건설 등 철강이 쓰이는 전방산업이 부진한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원래 조선이 좋지 않은데다, 코로나19로 자동차·기계 수요도 급감했다. 내수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글로벌 시장이 사실상 락다운(일시 정지) 상태"라고 말했다.

글로벌 철강사 조강 생산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글로벌 철강사 조강 생산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에 따라 포스코·현대제철의 2분기 실적도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에 따르면 포스코의 2분기 영업이익은 39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현대제철은 2분기 13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제철은 1분기에도 29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철광석 가격은 오르는데 제품 가격은 하락 

'철의 시대 종언'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철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반면 중국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철강 생산량을 늘리며 글로벌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또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는 데 반해, 강판·후판 등 제품 가격은 공급 과잉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철강협회도 올해 철강 수요가 지난해보다 6.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2분기 대부분 국가에서 철강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며 "5월 이후 조금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회복은 더딜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철강이 살아남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통한 대량 생산이 아닌 고부가가치 강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했다. 정은미 본부장은 "고급 강종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며 "최근 한국 조선업계가 수주한 대형 LNG 운반선에 들어가는 강판 등이 그런 제품"이라고 말했다. LNG 운반선 제조에 쓰이는 강판은 가벼우면서도 부식에 대한 내구성이 높은 편이다.

프리미엄제품 비중 6년전 22%서 지난해 30%로 

산업 구조 고도화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포스코는 2014년 '월드 프리미엄(WP)' 제품을 선보인데 이어, 지난해 '월드 톱 프리미엄(WTP)'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실제 포스코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량은 2014년 700만t에서 지난해 1000만t으로 확대됐다. 비중으로 치면 2014년 22.3%에서 지난해 29.7%로 늘었다. 문제는 이 분야에서 단기적으로 생산량이나 생산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월드 톱 프리미엄(WTP)' 제품 판매량. 사진 포스코

포스코의 '월드 톱 프리미엄(WTP)' 제품 판매량. 사진 포스코

포스코 관계자는 "차세대 강판이라 할 수 있는 기가 스틸, 녹슬지 않는 철 '포스맥(PosMAC), 전기차에 들어가는 고효율 전기강판 '하이퍼 NO', 수소 전기차용 금속분리판 소재 'Poss470FC'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꾸준히 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LNG 저장탱크 소재인 고망간강과 친환경 선박용 고합금 스테인리스강도 사용 승인을 받고,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자동차 강판에서 경쟁력을 갖춘 현대제철도 고부가가치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점유율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은 "프리미엄 제품 생산량을 지난해 891만t에서 올해 910만t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종만 NH증권 연구원은 "포스코 등 한국 철강사의 기술력은 세계 톱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듯 장기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프리미엄 제품뿐만 아니라 공장 운영의 효율성을 통한 원가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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