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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의 역공 “아시아나 M&A 원점서 재협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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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의지는 있지만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달라고 채권단에 공식 요청함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주인 찾기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9일 인천국제공항에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서 있다. [뉴스1]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의지는 있지만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달라고 채권단에 공식 요청함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주인 찾기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9일 인천국제공항에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서 있다. [뉴스1]

아시아나항공의 주인 찾기 항로가 또다시 안갯속이다.

채권단 “입장 밝혀라” 압박에 답변 #“인수의지 변함없지만 상황 급변” #계약 이후 빚 4조5000억 늘고 #부채비율도 6281%로 치솟아 #인수 포기냐 가격 낮추기냐 분분

9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27일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이 2조5000억원 빅딜로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지 165일 만이다. 공은 채권단과 금호산업으로 넘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은 재협상으로 매각될지, 아니면 매각 절차가 중단될지 갈림길 앞에 멈춰섰다.

현산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며 “인수상황 재점검을 비롯해 인수조건을 다시 협의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채권단이 ‘이달 27일까지 인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계약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현산에 보낸 것에 대한 공식 답장인 셈이다. 이달 27일은 서류상 계약 완료 예정일이다.

현산, 아시아나 인수 재협상 요구 왜

현산, 아시아나 인수 재협상 요구 왜

현산이 인수 조건 재협의를 요구하고 나선 데는 2조5000억원에 품은 아시아나항공 몸값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으로 아시아나항공은 일부 자본잠식 위기에 놓여있다. 현산 측은 “계약 이후 인수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인수가치를 훼손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현산은 계약 때와 달리 지난해 말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파악된 데다 채권단의 1조7000억원 긴급 차입으로 부채가 4조5000억원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6281%로 지난해 말(1386%)보다 4배 이상으로 올라갔다. 현산은 “계약 이후 당기순손실은 8000억원 이상으로 확대되고, 자본잠식도 나타나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 실적

아시아나항공 실적

더욱이 2019년 감사보고서(지난 3월 공시)에서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놔 계약 기준이 됐던 재무제표의 신뢰성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둘러싼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재협상과 인수 중단이다. 우선 채권단과 현산, 그리고 매각주체인 금호산업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재협상의 관건은 인수가격이다. 현산이 구주 대금 등 인수가격을 깎아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

채권단 “현산, 소송까지 고려한 느낌” 오늘 오전 입장 내기로

채권단은 이날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익명을 요청한 채권단 관계자는 “현산이 갑자기 입장문을 발표해 혼란스럽다”며 “입장문을 보면 협상 무산시 소송까지 고려한 느낌이 묻어난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금융당국과 조율해 10일 오전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채권단의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며 “인수가격을 깎기도 쉽지않지만, 인수를 중단하더라도 업황이 어려워 새로운 인수자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일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일지

현산이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현산이) 계약조건 변경을 위해 근거로 제시한 부분이 상당히 상세하다”며 “마치 인수 포기를 대비한 귀책사유를 뽑아놓은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산은 입장문에서 아시아나항공이 자신들의 동의 없이 채권단으로부터 1조7000억원의 자금을 빌리고, 자금 일부를 에어서울 등 계열사에 지원한 부분을 적시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약 이후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됨에 따라 현산이 추가로 넣어야 할 자본금이 2조원을 넘어서 부담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선 해석이 엇갈린다. 현산이 조건 변경 카드를 제시하며 인수를 포기하기 위한 출구 전략을 만들었다는 분석과 채권단으로부터 대규모 금융지원을 끌어내 인수가격을 낮추겠다는 전략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면 재매각 주도권은 산업은행으로 넘어간다.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한 금호그룹이 통째로 채권단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지주회사인 금호고속은 이미 자회사인 금호산업 보유지분 등을 담보로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호그룹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번 매각 협상 불발시 추가적인 자금 투입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후 재매각 절차를 밟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 경우 계열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의 분리매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염지현·곽재민·정용환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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