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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차 벙커 갔다"는 트럼프에 법무장관의 반격 "피신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인종 차별 항의 시위가 너무 과격해져 백악관 비밀경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하 벙커로 피신시켰다고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밝혔다. 벙커로 피신한 게 아니라 점검 차 잠시 내려갔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시위 최루탄 발포 책임자로 몰리자 해명 #시위 대응 놓고 트럼프 행정부 우왕좌왕

지난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 투입 엄포에 반기를 든 데 이어 현직 장관의 두 번째 '반란'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또 거짓말을 했다고 전했다.

바 장관은 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지난달 말 백악관 비밀경호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전을 위해 지하 벙커로 이동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바 장관의 주장은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행차'를 위해 평화로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킨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바 장관은 "백악관 바로 앞에서 사흘간 극도로 폭력적인 시위가 열렸다"면서 "방화가 일어났고 경찰관 여러 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나빠지자 비밀경호국이 대통령에게 지하 벙커에 내려갈 것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오죽 시위가 폭력적이었으면 대통령이 벙커로 피신했겠느냐는 취지였다. 바 장관이 과격한 측면을 부각한 이유는 그가 최루탄 발포 등 강제 해산을 지시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피신할 정도로 백악관이 위협받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구역을 확대하기 위해 백악관 앞 시위대를 밀어냈다는 설명이다. 결국 자기 변호를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어긋나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맨 왼쪽)이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백악관 맞은편 세인트 존스 교회로 향하고 있다. 바 법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행차'를 위해 백악관 앞 시위대를 최루탄으로 강제 해산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맨 왼쪽)이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백악관 맞은편 세인트 존스 교회로 향하고 있다. 바 법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행차'를 위해 백악관 앞 시위대를 최루탄으로 강제 해산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시 경찰이 최루탄과 곤봉, 방패로 시위대를 쫓아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바 법무장관, 에스퍼 국방장관 등을 대동하고 걸어서 백악관 맞은편 교회로 가 성경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상황을 통제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촬영 행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때 지하 벙커로 피신했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나오자 점검을 위해 낮에 내려간 적은 있으나 피신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라디오 인터뷰에서 "잘못된 보도였다. 나는 내려가지 않았다"고 일단 부인한 뒤 "낮에, 매우 짧은 시간 그곳에 머물렀다. 점검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말했다.

폭력 시위 문제는 밤에 있었는데, 낮에 내려가 둘러봤기 때문에 피신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지하 벙커에는 두세 번 정도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벙커 피신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 진압을 위해 연방군 투입도 불사하겠다고 발표하자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지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백인 경찰관에 의한 흑인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 내 혼선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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