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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 일하는 '현대판 노예' 외국인 선원…해수부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한국 선박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이 ‘현대판 노예제’와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고발이 나오자 정부가 외국인 선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나섰다.

 해양수산부는 9일 외국인 선원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관리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인권단체와 함께 어선 현장조사를 추진하고 연 1회 실시하던 인권문제 실태 점검도 연 2회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8일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회관에서 공익법센터 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관계자가 '이주어선원 인권침해와 불법어업 실태고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회관에서 공익법센터 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관계자가 '이주어선원 인권침해와 불법어업 실태고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4명 중 1명은 하루 20시간 노동”

 앞서 8일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등 4개 시민단체는 간담회를 열어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과 20t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 대부분이 낮고 차별적인 임금과 휴식시간 보장이 없는 장시간 노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가 2016~2019년 한국 원양어선에서 일했던 외국인 선원 54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하루 12시간 이상 육체노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57%)은 하루 18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고, 20시간 이상 일한 선원도 4명 중 1명 이상(26%)이었다.

 이들 단체는 외국인 선원 41%가량이 월급 500달러(약 60만원)도 받지 못한 채 일했다고 지적했다. 이마저도 한국 선박에서 일하기 위한 송출 비용(소개비) 등이 공제돼 한국인 선원과 차별적 대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외국인 선원에게 폭력과 욕설은 일상적이었다”며 “병이 나도 적절한 치료 없이 노동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연합뉴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연합뉴스

해수부 “인권 보호 부족, 심심한 사과”

 해수부는 우선 외국인 선원의 임금 조건을 개선할 방침이다.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의 임금 현실화를 위해 노·사·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임금 수준을 조정한다. 또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미얀마 등 주요 송출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현지 송출업체가 과도한 송출비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관리·감독 강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또 어선원의 근무시간·휴식시간 등의 조건을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어선원 노동협약(C.188)의 국내 비준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원양어선에는 적정 거주 공간을 확보하고 외국인 선원이 가족과 연락할 수 있도록 선내 와이파이 등 무선통신망도 설치한다. 선원 인권침해 행위로 실형이 확정된 선박 관계자의 경우 외국인 선원의 배정을 제한하고 면허를 취소할 계획이다.

 김준석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외국인 선원의 인권 보호에 부족한 점이 있었던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외국인 선원이 국내 수산 업계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 적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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