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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험 원하면 혈서 받아와라" 학교가 학생에게 한 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일 오후 대구시 남구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에서 사진 미디어학과 학생들이 사회적 거리를 충분히 두고 대면 방식으로 실기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대구시 남구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에서 사진 미디어학과 학생들이 사회적 거리를 충분히 두고 대면 방식으로 실기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이 '방역'과 '공정성' 사이의 딜레마에 빠졌다.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한 중간고사에서 크고작은 부정행위가 일어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말고사를 대면시험으로 바꾸려는 대학들이 늘고 있지만, 대면시험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퍼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한양대에서는 학교 관계자의 '혈서' 발언이 논란을 불렀다. 지난 5일 한양대 신본관에서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학생에게 학교 관계자가 '비대면 시험을 원하면 학생들의 혈서를 받아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다.

농성 현장에 있던 류덕경 총학생회 교육정책위원장은 "농성장에 온 기획처장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 '비대면 시험이 모든 학생의 요구인지 불명확하다'며 '원한다면 학생들에게 혈서를 받아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했다.

교내방송국 기자인 성시호(24·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씨는 "현장에 있던 학생들이 '혈서'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면서 "이후 처장에게 직접 진위를 묻자 '그런 의미로 발언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학생 59.9% "기말고사, 비대면으로"

 지난 3월 11일 오후 한양대 의대 본관. 연합뉴스

지난 3월 11일 오후 한양대 의대 본관. 연합뉴스

한양대는 지난달 19일 1학기 전체 기말고사를 대면시험으로 치르겠다고 공지했다. 자가격리나 해외 체류 등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학생이 대면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학교 측은 초·중·고 등교가 시작되고 국가 공무원 시험 등이 재개된 사정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반발했다. 총학생회가 지난달 20일부터 약 일주일 동안 재학생 4321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열명 중 여섯(59.9%)이 기말고사를 비대면으로 치러야 한다고 답했다. 대면시험을 지지한 응답자는 32%다.

비대면 시험을 원하는 학생들은 1만명이 넘는 재학생이 학교에 모여 시험을 보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학생은 학내 커뮤니티에 "380여명의 학생이 한 공간서 수업을 듣고, 밀폐된 강의실도 있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양대의 몇몇 학생은 성동구청에 학내 방역 문제를 지적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 재학생들이 만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답안을 공유한 학생들이 기말고사 답도 공유하자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톡 메신저 캡쳐]

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 재학생들이 만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답안을 공유한 학생들이 기말고사 답도 공유하자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톡 메신저 캡쳐]

중간고사를 비대면으로 치른 대다수 대학이 속속 대면시험으로 전환하는 주된 이유는 학생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앞서 인하대·건국대·서강대에선 메신저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이에 따라 고려대·경희대·한양대 등은 관리·감독이 쉬운 대면시험으로 전환했다.

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 재학생들이 만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답안을 공유한 학생들이 기말고사 답도 공유하자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톡 메신저 캡쳐]

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 재학생들이 만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답안을 공유한 학생들이 기말고사 답도 공유하자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톡 메신저 캡쳐]

실제로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다가오는 기말고사에서 부정행위를 시도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서울 소재의 한 4년제대 학생들이 만든 오픈 채팅방에서는 기말고사에서 부정행위를 꾀하는 듯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 채팅방 참가자가 '기말고사도 답안을 공유하나요'라고 묻자 다른 참가자가 '하는 거 아니냐'며 '오픈채팅방은 신상 특정이 안 된다'고 답했다.

"절대평가, 과제물 대체 등 대안 필요"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교직원들이 일부 실험·실기·실습·설계교과목의 강의실 수업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교직원들이 일부 실험·실기·실습·설계교과목의 강의실 수업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뉴스1

대면·비대면 시험 모두 허점이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류덕경씨는 "일부 비대면 시험에서 발생한 공정성 문제를 학생들도 걱정하고 있다"면서 "대면·비대면으로 나눌 게 아니라 '과제물 대체'나 부정행위를 할 동기가 줄어드는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양대 재학생은 "상대평가가 이뤄지는 수업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나면 학생들에겐 치명적"이라면서 "차라리 절대평가를 시행하고 비대면 시험을 보거나 과제로 평가를 대체하는 수업을 늘렸으면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학교 측은 비대면 시험을 강제한 것은 아니라며 교수의 결정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평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양대 관계자는 "기말고사 때도 교수가 판단해 비대면 시험이나 과제 대체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 꼭 대면시험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남궁민 기자, 양인성 인턴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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