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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와 하씨는 동일인" 주민번호 2개로 27년 산 여자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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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 자료화면. [사진 JTBC 캡처]

주민등록증 자료화면. [사진 JTBC 캡처]

생년월일과 성별 등의 정보를 포함한 숫자로 만들어지는 주민등록번호. 출생신고와 함께 당연히 1인당 1개의 주민등록번호를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2개의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 1993년생인 하모씨 얘기다. 과거 출생 신고 업무를 맡았던 동장 등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 반쪽짜리 주민등록번호 1개와 온전한 주민등록번호 1개를 둘 다 부여받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주민등록번호는 2개, 가족관계등록부는 1개

하씨는 태어날 때 출생 신고를 하며 동장의 실수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채 지냈다. 4년 뒤 어머니가 재혼하며 새아버지 성씨인 유씨로 2차 출생 신고를 한다. 이때 93으로 시작하는 13자리 숫자를 모두 부여받았다. 그런데 출생 신고 두 달 뒤, 행정관청에서 또 연락이 온다. 1993년에 어머니가 하씨를 출산해 신고했고, 이미 가족관계에 등록됐으므로 새아버지 유씨로 된 호적에는 올릴 수 없다는 통보였다. 벌써 유씨로 두 번째 주민 등록은 마친 상태였다. 즉 하씨 성으로는 반쪽짜리 주민등록번호 1개와 가족관계등록부, 유씨 성으로는 가족관계등록부는 없이  온전한 주민등록번호 1개를 가진 셈이 됐다. 이후로는 유씨 성을 쓰며 학교를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했다.

2018년 20대 중반이 된 유씨(하씨)는 살고 있던 곳 구청장을 상대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해달라는 신청을 한다. 주요 주장은 “하씨와 유씨는 동일인이므로 유씨로 된 주민등록증을 반환할 테니 하씨로 된 주민등록증을 달라”는 취지였다. 2010년 새아버지가 사망한 뒤 유씨로 살아보려고 법원에 성과 본에 대한 창설허가 신청도 내고, 어머니와 친생자 관계 존재확인 소송도 냈지만 유씨 성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청은 유씨의 신청을 거절했고, 유씨는 소송에 나섰다.

法 "유씨와 하씨 동일인 인정…신청 들어주라"

서울행정법원 14부(재판장 이상훈)는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유씨와 하씨의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보고 신청을 받아들여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유씨가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유씨와 어머니 사이의 친생자 관계는 과학적으로 99.9% 이상 입증됐다.  또 유씨 어머니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친자는 1993년생인 하씨와 2004년생인 유씨 2명밖에 없는데, 200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원고가 2004년생일 수는 없었다. 재판부는 1993년생인 하씨와 신청인 유씨가 동일인이라고 추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 유씨를 하씨로 인정하기 충분하고, 구청장은 이 사건 신청에 따라 하씨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주민등록증을 교부할 의무가 있다”며 유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고 8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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