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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이번에도 허경영 따라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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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여야 모두 ‘기본소득앓이’ 중이다. 특히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을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며 이슈가 커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초연금처럼 통합당에 어젠다를 뺏길지 모른다”며 정부·여당의 발 빠른 대응을 주문했다.

3년 전 기자가 ‘인간혁명’ 시리즈 첫 회로 기본소득을 다룰 때만 해도 먼 일처럼 보였다. 기술 발달에 따른 ‘노동의 종말’로 기본소득과 가짜직업이 도입될 거란 내용이었다.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 예산이 투입된 기술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금화하고, 개인정보를 사고팔 수 있는 데이터거래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실제 도입은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할 거라고 봤다.

그런데 지난해 허경영이 국가혁명배당금당을 창당하면서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가를 기업으로 보고, 주주인 국민에게 매달 배당금을 준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공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직전 재난지원금으로 운을 떼더니 지금은 여야 할 것 없이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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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허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현실이 될까. 2007년 허경영은 출산·청년·노인 수당 등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처음엔 황당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대부분 도입됐다. 이제 기본소득 차례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핵심은 예산이다. 2016년 스위스가 국민투표에 부쳤다 부결된 것도 뾰족한 재원이 없어서였다. 1974년부터 유전 개발 수익을 시민들에게 원유배당금(oil check)으로 나눠주는 알래스카주처럼 갑자기 석유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막대한 비용을 대기 힘들다. 그래서 앤드류 양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은 로봇세 등을 걷어 기술배당금(tech check) 형태의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반면 한국 정치인들은 이 부분을 쏙 빼놓는다. 그 대신 현금성 복지제도를 없애고 세금을 더욱 투명하게 걷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올해 재정적자가 112조원에 달하고 앞으로 국민연금 등 예산으로 메워야 할 곳 천지다. 이런 상황에 아껴 쓰자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국회의원 세비를 없애고 재산에 비례해 벌금·과태료를 물려 세수를 확대하겠다는 허경영의 주장이 더욱 구체적이다.

현금을 뿌리는 포퓰리즘은 마약과 같아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점점 강도만 세질 뿐이다. 지난 1월 기자와 인터뷰 당시 허경영은 “여야 할 것 없이 내 공약을 베꼈다, 포퓰리즘으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그가 할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여야 모두 허경영을 따라 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분명하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