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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여성은 꼭대기층 눌렀다···흑인아이 추락사에 브라질 분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브라질 북동부 헤시피에 사는 5세 흑인 소년 미구엘 다 시우바는 지난 3일(현지시간) 흑인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에 따라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시우바가 맡겨질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부인 엄마를 따라갔다가 엄마의 고용주 집에서 추락해 숨진 5세 흑인 소년 미구엘 다 시우바.  [엘 파이스 홈페이지 캡처]

가정부인 엄마를 따라갔다가 엄마의 고용주 집에서 추락해 숨진 5세 흑인 소년 미구엘 다 시우바. [엘 파이스 홈페이지 캡처]


극은 시우바의 엄마가 집주인인 백인 여성의 지시를 받고 반려견을 산책시키러 나간 사이 벌어졌다.

백인 집주인 지시로 엄마는 반려견 산책 #소년 혼자 엘리베이터 타게 내버려 둬 #9층 버튼까지 눌러줘, 소년 추락사 #"흑인 생명도 소중" 분노 시위 벌어져

잠시 백인 집주인에게 맡겨진 소년은 엄마를 따라 나가고 싶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집주인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어린 소년을 말리지 않았다. 더욱이 소년과 엘리베이터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을 뻗어 맨 위층 버튼을 눌러주기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은 폐쇄회로TV(CCTV)에 촬영됐다.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까지 올라간 소년은 발코니 난간에서 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흑인 소년 시우바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지난 5일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흑인 소년 시우바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지난 5일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6일 AFP통신,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 등 외신에 따르면 이처럼 백인 주인에게 잠깐 맡겨진 흑인 어린이가 추락사한 사건을 계기로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흑인 어린이의 안전을 등한시한 백인 여성의 행동은 브라질에서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로 확산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브라질 헤시피에선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 시위자는 "미구엘의 삶은 많은 다른 흑인 노동자 가정 아이들의 현실을 상징하기 때문에 나왔다"면서 "우리 중 누구라도 그 소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소년의 사진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법원에서 시작해 소년이 사망한 건물까지 행진했다.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흑인소년 시우바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흑인소년 시우바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겪고 있다. 흑인은 브라질 인구의 약 56%를 차지하지만, 흑인의 임금은 백인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고 알려졌다.  

브라질 소셜미디어(SNS)에는 시우바의 사망에 대해 슬퍼하고,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브라질의 정치인과 활동가들은 #justicapormiguel(미구엘을 위한 정의)란 해시태그를 달며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사학자 라리사 이부미는 "브라질에서 뿌리 깊은 인종차별 때문에 또 한 명의 흑인 아이를 잃었다"면서 "이것은 여전히 흑인 여성들을 백인 여성들의 하인으로 취급하는 식민지 구조물의 결과"라고 적었다.  

시우바의 어머니는 브라질 방송 TV 글로보와의 인터뷰에서 "(백인) 고용주는 종종 자신의 아이들을 내게 맡겼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아들을 잠시 맡겼을 때 그녀는 아들을 돌봐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줄 인내심조차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백인 고용주는 형사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고 외신은 전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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