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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려워서" 24년 만에 연주되는 진은숙의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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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작곡가. [중앙포토]

진은숙 작곡가. [중앙포토]

 이 곡은 바이올린의 활을 굉장히 빠르게 떨듯이 움직이는 트레몰로로 시작한다. 바이올리니스트는 한 악장 전체에 걸쳐  5분 정도 빠르고 반복적으로 트레몰로를 지속해야 한다.

진은숙이 1996년 작곡한 현악4중주 ‘파라메타스트링’이다. 진은숙의 유일한 현악4중주로, 총 4개 악장인 이 곡은 같은 해 한국에서 초연된 후 지금껏 연주된 적이 없다. 이달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에스메 콰르텟이 24년 만에 연주할 예정이다.

이처럼 오랜만에 연주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곡이 워낙 고도의 연주실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악장의 긴 트레몰로뿐 아니라 이후 악장에서도 현 위에서 손가락을 미끄러트리는 글리산도, 활을 줄 위에 공 튀기듯 연주하는 리코셰, 활털 대신 활대로 줄을 치는 콜 레뇨 등의 까다로운 기법을 많이 활용했다.

에스메 콰르텟. [사진 크레디아]

에스메 콰르텟. [사진 크레디아]

에스메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배원희는 “현악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테크닉을 한 곡에 넣어 현악기 기법의 극한을 탐구할 수 있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미리 녹음된 음원을 무대에서 재생해야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ㆍ하유나, 비올리스트 김지원, 첼리스트 허예은으로 구성된 에스메 콰르텟은 2018년 런던 위그모어홀의 현악4중주 콩쿠르에서 한국팀 최초로 1위를 차지하며 화제가 됐던 팀이다. '사랑받는' 이라는 뜻의 프랑스 옛말인 '에스메'로 이름을 정하고 창단 1년 6개월 만에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루체른과 엑상프로방스 등 유럽 유수의 페스티벌에 초청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9일 무대는 콩쿠르 우승 2년 만의 한국 정식 데뷔. 이들은 국내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았던 진은숙의 작품을 골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한국 음악인 사이의 유대를 강조한다.

배원희는 “몇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현악4중주단이 라디오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걸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그게 진은숙 작곡가의 곡이어서 더 놀랐다”고 했다. 콰르텟 멤버들은 이 곡을 잘 연주하기 위해 베를린에 거주하는 진은숙 작곡가를 찾아가 조언을 들었다. 바이올린 멤버인 하유나는 “소리의 질감을 더 살리고 특징을 두드러지게 하도록, 또 기존 현악기 소리에서 벗어나 더 신비하고 다차원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에스메 콰르텟과 진은숙 작곡가(왼쪽 두번째). [사진 에스메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과 진은숙 작곡가(왼쪽 두번째). [사진 에스메 콰르텟]

독일에 거주하는 진은숙은 현재 유럽과 북미의 공연장과 연주단체가 앞다퉈 초청하는 작곡가다. 1월엔 덴마크의 권위 있는 음악상인 레오니 소닝의 수상자로 결정됐고, 베를린필, 뉴욕필 등을 비롯한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곡을 위촉받아 쓰고 있다. 또 LA필하모닉은 내년 4~5월 공연의 테마를 ‘서울’로 정하고 진은숙에게 프로그램 구성 및 감독을 맡겼다.

에스메 콰르텟이 연주하는 진은숙의 작품은 9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다. 에스메 콰르텟은 진은숙의 작품과 함께 모차르트 현악4중주 14번,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를 연주곡으로 골랐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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