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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도 추미애도 당했다··뻑하면 "직권남용죄 따져달라" 고발

중앙일보

입력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왼쪽)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왼쪽)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A씨는 2018년 3월 “서울도봉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자신의 등 뒤에서 왼쪽 손목을 잡아 비틀어 타박상을 입었다”며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로 해당 경찰관을 고소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해 7월 A씨에 대해 무고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가 폭행을 당한 사실이 없었음에도 경찰관이 형사처벌을 받도록 무고했다고 판단해서다. 이는 공무원들에 대한 직권남용죄 고소·고발이 남용되는 단적인 사례다.

2016년 4553건 → 2019년 1만6768건

직권남용 고소, 고발 관련 접수 및 처리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직권남용 고소, 고발 관련 접수 및 처리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검찰에 접수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고소·고발 사건은 인원수 기준 5034건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에는 한 해동안 4553건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9116건을 기록하면서 2배로 뛰었다. 이후 2018년 1만3738건, 2019년 1만6768건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추세면 올 한해 직권남용죄 고소·고발 사건은 2만건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직권남용죄 기소율은 일반 사건과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 올해 3월까지 접수된 5034건 중 공판에 넘겨진 건 단 3건이었다. 2018년 직권남용죄 기소율은 전체 고소·고발 건수에 0.34%에 불과했고, 2019년에도 0.13%에 그쳤다. 일반 사건의 평균 기소율은 35% 수준이다.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는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죄를 의미한다. 이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직권남용죄는 적용된 사례가 드물어 사실상 법전 속에서 잠자는 범죄였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농단 사건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등에서 단골로 등장했다. 적폐 청산과 정치적 목적 등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면서 고소·고발이 늘어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너나없이 툭하면 “직권남용죄 따져달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정책과 인사, 판·검사들의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내려진 결정에 불만을 품은 민원성 고발이 줄을 잇는다.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들을 좌천시킨 1월 검찰 인사를 결정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역시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는 지난해 12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 재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판사가 검찰이 요청한 정 교수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했다는 이유였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올 1월 청와대 공직비서관 재직 당시 자신이 조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로 기소된 것에 대해 “검찰권을 남용한 기소 쿠데타”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한 공무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례도 나온다. 진보 성향의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는 2018년 4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감사를 무마하고 보복성 인사를 했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고발했다. 재판 과정에서 구속됐던 안 전 국장은 올해 초 대법원에서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직권'도, '남용'도 애매…공무원 '복지부동' 만든다"

현행법은 공무원의 직무 범위와 남용의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직권남용죄 사건에서 직무 권한을 놓고 매번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유다. 직권에 해당하더라도 위법한 지시였다는 점이 입증돼야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열심히 일한 공무원일수록 직권남용죄로 처벌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 때문에 고발이 남용되면 공무원 사회가 움직이지 않고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정치세력과 한몸처럼 움직이는 시민단체들이 범죄 사실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발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치권부터 이를 활용하지 않으려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며 "공무원들의 범죄를 구체적인 법률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광우·김수민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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