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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머니]개 키우려면 방 빼라고?···말뿐인 집주인 으름장 소용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반려동물을 데리고 전·월셋집을 구하는 세입자와 '반려동물은 사절'이라는 집주인 간의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의 씁쓸한 단면이죠. SNS 등엔 '집주인 때문에 못 키워 입양 보낸다'는 글이 잇따르고, 반려동물 커뮤니티에는 '강아지(또는 고양이) 키울 수 있는 집' 정보가 공유될 정도입니다. 반려동물이 주택 임대차 계약의 새로운 변수가 돼버린 형국인데,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집 안 거실에 소변 본 강아지. 셔터스톡

집 안 거실에 소변 본 강아지. 셔터스톡

#개 키우려면 방 빼라?

=실제 사례로 살펴보자. 서울 마포구 도화동 빌라에 사는 A(33) 씨는 지난 3월 반려견 문제로 집주인과 말다툼을 했다. 개가 짖어 민원이 잇따르자 집주인이 "개를 키우려면 방을 빼라"고 통보해서다. 집주인은 소음 외에도 '관리 문제'를 들었다. 개가 벽지나 장판을 뜯어놓거나 빌트인 가구를 물어뜯어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거다. A씨는 올 초 전세 계약 당시 계약서에 반려동물 거부 내용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며 버텼다. 그러나 집주인은 '애초에 개를 키운다고 말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며 완강히 맞섰다. 집을 비워줄 수 없었던 A씨는 결국 친구에게 반려견을 맡겼다.

#계약서에 없으면 강제성 없어

=결론부터 말하면 A씨의 경우 전세 계약 해지 또는 강제 퇴거 의무는 없다. 계약서상에 특약 사항으로 반려견 사육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계약을 해지할 권리가 없고, A씨도 집주인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만약 계약서에 '반려동물 금지'에 대한 내용이 있다면 계약상 의무가 되기 때문에 집을 빼줘야 한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은 반려동물 키울 수 있는 집을 따로 분류해 놨다. 다방 홈페이지 캡처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은 반려동물 키울 수 있는 집을 따로 분류해 놨다. 다방 홈페이지 캡처

#계약 때 말 안 했다면 문제다?

=세입자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실을 집주인과의 계약 때 꼭 알릴 의무도 없다. 이를 뒷받침할 판례도 있다. 2017년 2월 우모 씨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전세 보증금 4억원에 살기로 집주인과 계약했다. 계약금으로 전체의 10%인 4000만원을 줬다. 하지만 집주인은 우씨가 반려견 세 마리를 키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계약 10여 일만에 계약을 파기했다. 우씨는 위약금으로 8000만원(통상 계약금의 2배)을 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은 '우씨가 반려견을 키운다는 얘길 안 했다'며 4000만원만 돌려줬다. 우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법원은 "집주인이 반려견을 기르지 않는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세운 적 없고, 사회 통념상 아파트에서 반려견을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반려견 3마리가 모두 소형견이라 이를 집주인에게 먼저 말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집주인이 계약을 파기할 다른 목적이 없는 데다, 세입자도 크게 손해 입지 않은 점을 고려해 계약금 4000만원 외에 1200만원 지급을 결정했다.

고양이와 강아지. 셔터스톡

고양이와 강아지. 셔터스톡

#의무는 없지만, 미리 고지해야

=그러나 세입자는 임대차 계약을 할 때 미리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좋다. 집주인 또는 이웃 간 분쟁 소지를 막기 위해서다. 구두로 '반려동물 사육'을 약속했더라도 계약서에 특약을 통해 남겨야 추후 뒤탈이 없다. 동물권연구단체 PNR의 안나현 변호사는 "계약 후 집주인과 갈등이 생길 경우 벽지 훼손 같은 문제 발생 시 수리비 전액을 변상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방법으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집을 임대할 때 특약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는 게 좋다. 특약 내용에 제한은 없다. 예컨대 "집 안에서 개와 고양이, 파충류, 곤충 등 생물 사육을 금지한다. 추후 적발 시 강제 퇴거, ○원의 벌금을 문다"는 식으로 기재해도 법적으로 문제없다. 계약 내용은 당사자 간 합의만 하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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