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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은퇴한 김지영 "상처 많은 맨발, 이제 보면 예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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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을 느끼기 위해 저 먼 우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국립발레단 무대에서 보는 발레리나 김지영이 ‘중력에 저항하는 몸짓’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컴퍼스처럼 발끝을 딛고 팽그르르 도는 모습이 오랜 인내 속에 눈부시게 날아가는 나비와도 같았죠. 첫사랑에 빠진 여인(‘로미오와 줄리엣’), 모험과 환상의 뮤즈(‘돈키호테’), 시대의 비운을 껴안은 팜므파탈 스파이(‘마타하리’) 등의 이야기를 그렇게 온몸으로 들려주었습니다. 2019년 6월 국립발레단 은퇴공연 ‘지젤’ 막이 내린 뒤, 많은 이들이 ‘김지영 상실감’을 토로한 이유입니다.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 발레리나 김지영

이젠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그 자신도 ‘무대 갈증’을 느끼나 봅니다. “너무 빨리 내려놨나보다” “힘들어서 하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 왜 그랬을까. 왜 좀 더 즐기지 못했을까” 싶다고 솔직히 털어놓네요. 10대 중반 러시아로 발레 유학을 떠나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 명성을 날리고 국내 복귀 후 국립발레단의 중흥을 이끌었던 시간이, 이젠 그립고 아쉬운가 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와 관객과의 호흡이 끊어진 요즘 상황에 “인간의 온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그런 김지영이 챙겨온 ‘생활보물’ 역시 자신의 발레 인생을 요약해주는 한 쌍의 사진입니다. 김중만 작가가 찍은, 토슈즈를 신은 발과 벗은 맨발. 부상도 많았고, 갖은 상처가 끊이지 않았던 발이지만 이걸 딛고 무대를 점프하고 우주로 날았으니까요. 이제 큰 무대에서 내려온 김지영 발레리나가 더 넓어진 인생 무대에서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길, 함께 응원합니다.

기획ㆍ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촬영= 공성룡ㆍ여운하, 영상=김태호ㆍ정수경, 그래픽=황수빈

생활보물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는 유명인에게 색다른 의미가 있는 물건을 통해 생활 속 문화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영상 콘텐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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