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122609’
현충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9명의 대학생이 손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모였다. 광장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펼쳐 든 것은 위·아래가 일부 잘린 태극문양 그림의 팻말. 옷깃에도 같은 모양의 배지를 하나씩 달았다.
전사자 유골함 감싼 모습 본뜬 배지 #청년들 SNS 인증샷 올려 운동 주도 #“6·25 참전 생존자 평균 나이 90세 #이들 희생 역사적 의미 평가해야” #보훈처, 12만2609개 배지 배포키로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학생인 이들이 이날 모인 이유는 호국·보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상징물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122609’라고 이름 붙인 이 그림은 참전용사의 유골함에 태극기를 도포한 모습을 표현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참전용사의 유해를 유골함에 담은 뒤 예우를 갖춰 태극기로 감싸는데, 이를 위에서 바라본 모양이다. 공공캠페인 전문가인 이종혁 광운대 교수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도안을 개발하고 배지 500개를 제작했다.
이 교수가 수업 시간에 도안을 소개하자 학생들은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 ‘태극기 배지 주면 달고 다닐래?’라고 물었을 땐 피식 웃던 학생들이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자 반응이 달라졌다.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선 학생들은 10~20대가 많이 이용하는 SNS에 배지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사진을 보고 신청하는 사람에게는 우편으로 배지를 보내줬다. 배지 모양이 예뻐 갖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고, 경상도 지역의 고교생도 배지를 받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지난달 중순 시작한 이 캠페인을 통해 사전 제작한 배지 500개가 소진됐다.
캠페인에 나선 이정윤(24)씨는 “배지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언젠가부터 태극기가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태극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외할아버지가 6.25 참전군으로 현충원에 모셔져 있고 친척 중에 미수습 전사자로 남은 분도 계셔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윤재우(25)씨 역시 “처음에는 왜 굳이 태극기를 끄집어내서 나서냐고 하던 또래 친구들도 캠페인의 취지를 알고 나서는 그 뜻에 공감했다”고 주변의 반응을 전했다.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122609’ 캠페인이 20대 청년들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태극기가 과도한 애국주의를 뜻하는 이른바 ‘국뽕’의 상징으로 사용되거나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낮은 연령층에서 특히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권용준(23)씨는 “현충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일도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태극기의 올바른 가치에 대한 인식이 흐려진 것 같다. 6·25전쟁이 언제 발발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국기이자 보훈의 상징인 태극기를 보면서 ‘할아버지나 달고 다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이상했다”라고 말했다. 전쟁을 겪은 지 70년이 지났고, 그렇기에 보훈의 가치가 큰 우리나라에서 그 가치를 나눌 수 있는 마땅한 상징물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존경과 감사의 뜻을 담은 보훈 상징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상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나 마음 한 쪽에 애국심을 갖고 있지만 표현하기가 쑥스럽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카네이션을 달아주면서 마음을 표현한다. 애국심도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하나의 국가는 많은 사건과 기억들을 공유하는 공동체이기에 여러 상징이 필요하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호국·보훈의 가치는 이념과 세대를 뛰어넘는 우리의 존재 가치와 같다. 그런데도 그 가치가 세대를 관통해 공유된 적이 없었다.” 이 교수는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122609’가 학생들 사이에서 자발적 캠페인을 통해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에도 제안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포피(양귀비)가 보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한국판 포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의 제안에 정부 당국도 반색했다. 국가보훈처는 2005년 ‘나라사랑큰나무’ 배지를 제작한 바 있지만,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최정식 국가보훈처 소통총괄팀장은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런데 이 교수가 제안한 도안에는 우리만의 애절함과 한국다운 보훈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전사자 12만2609명을 기억하고 국가가 끝까지 이들을 찾아야 한다는 뜻에서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122609’라고 이름 붙인 캠페인을 진행할 방침이다. 1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숫자가 새겨진 12만2609개의 배지를 제작해 시민들에게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보훈처는 본격적인 캠페인을 펼치기에 앞서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종로·강남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 현수막을 걸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 태극문양과 함께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122609’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라는 글자만 적었다.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종의 티저 광고다.
최 팀장은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 유공자들의 평균 나이가 90세에 달한다. 살아계신 동안 이분들의 희생을 국민에게 알리고 역사적 의미를 평가해 드리는 게 마지막 명예를 지켜드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6·25 주간인 오는 19~25일에는 미국 하와이에 있는 6·25전쟁 국군 전사자의 유해 120구가 봉환될 예정이다. 미국이 북한지역에서 발굴해 간 유해 가운데 한미 감식을 통해 국군 전사자로 확인된 유해다. 현재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 보관 중인 이들 유해는 태극기에 감싸여 바다를 건너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미·영 전사자 추모 ‘포피’ 배지, 이념·세대 초월 국민 상징으로
영국의 현충일인 11월 11일은 ‘포피데이(Poppy Day·양귀비의 날)’라고 불린다. 이날을 전후해 영국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귀비꽃 모양의 배지나 모형을 달고 다닌다.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과 연예인, 축구 선수 등 유명인들도 마찬가지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캐나다·프랑스·뉴질랜드 등에서도 양귀비꽃은 순국 장병을 기리는 상징으로 쓰인다. 〈중앙sunday 5월 30일~31일자 16면〉
포피 캠페인의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군 군의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존 매크레는 당시 격전지였던 벨기에 플랑드르 들판에 핀 양귀비꽃을 보고 추모 시를 썼다. 영국 조지아대 교수이자 시인이었던 모이나 벨 마이클은 잡지에 실린 추모 시를 읽고 동료와 함께 양귀비 조화를 사 추모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후 양귀비꽃 모양의 배지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는 등 포피 캠페인이 점차 확산하면서 양귀비꽃은 보훈의 상징으로 공식화됐다. 호국·보훈의 정신을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한 포피 캠페인 창시자 모이나 벨 마이클의 이야기는 ‘포피 레이디(The Poppy Lady)’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종혁 광운대 교수는 “포피 캠페인은 국민 주도로 시작한 뒤 정부 당국이 국가적인 캠페인으로 키워나간 방식이었기에 이념과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식 국가보훈처 소통총괄팀장도 “보훈의 가치는 국민을 하나로 묶고 위기 시에도 국가 통합의 역할을 한다”면서 “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보다는 민간 중심의 보텀업(bottom-up) 캠페인이 전개될 때 생명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