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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사면 평생? 그때그때 원하는 가구로 바꿔 쓰세요

중앙일보

입력

CD를 사지 않고 음원을 다운 받아 듣는 것처럼, 자동차를 사지 않고 빌려 사용하는 것처럼, 가구도 사지 않고 빌려 쓸 수 있을까.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처럼 월정액을 내고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구독’ 개념이 가구에도 적용된다면. 소유보다 공유의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가구에도 구독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 방배동의 한 빌라. 가구 구독 서비스를 활용해 식탁과 의자로 주방을 꾸몄다. 사진 미공

서울 방배동의 한 빌라. 가구 구독 서비스를 활용해 식탁과 의자로 주방을 꾸몄다. 사진 미공

지난 2월 론칭한 가구 구독 서비스 ‘미공’에는 소파·침대·식탁·의자 등 집안을 구성하는 주요 가구들과 조명·쿠션·러그 등 소품까지 총 800여 종의 상품이 준비돼 있다. 원하는 가구와 소품을 골라 월 단위로 정기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다. ‘잭슨카멜레온’ ‘무니토’ ‘오블리크테이블’ 등 주로 국내 디자인 가구 위주로 구성돼 있다.
가구를 정기 구독한다는 어떤 개념일까. 신문이나 우유처럼 가구도 집으로 정기적으로 배송해준다는 의미일까. 가구는 개당 제품 가격이 높다. 때문에 주로 연 단위 구독이 많다. 예를 들어 소파 구독을 시작했다면, 월 단위로 정해진 금액을 내고 2년간 이용하다가 반납 후 또 다른 소파를 구독하는 식이다. 대여 기간이 끝난 후 소유보다는 반납을 택하고, 다른 모델을 연이어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매트리스·정수기 대여(렌털) 방식과는 약간 다르다. 물론 소파가 마음에 들면 할인된 금액으로 연장 이용도 가능하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에어비앤비에서 가구 구독 서비스 소파와 테이블로 거실을 연출했다. 사진 미공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에어비앤비에서 가구 구독 서비스 소파와 테이블로 거실을 연출했다. 사진 미공

일정 기간 지출한 월정액을 합하면 제품 구매 가격보다 크게 저렴하진 않다. 예를 들어 무니토의 에이블 소파 A+A 모델을 미공에서는 24개월 약정으로 월 8만7000원에 구독할 수 있다. 무니토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같은 제품의 가격은 206만원. 미공을 활용한 2년간 월정액의 합은 208만원. 구독했을 때가 2만원 더 비싸다. 단, 제휴 카드로 할인을 받으면 월정액이 2만원 정도 내려간다. 제품 반납 후 또 다른 제품을 구독하면 월정액은 약 20% 정도 내려간다. 그래도 생각보다 경제적인 선택은 못 된다. 가구 구독 서비스에 대해 “빌리는 비용으로 차라리 사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가구 구독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경제적인 선택은 아닐지라도 가구를 사는 것보다 빌리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가구 구독 모델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2017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페더’가 가장 유명하다. 이후 ‘퍼니쉬’‘브룩퍼니처’ ‘카사원’ ‘하스’ 등 가구 구독 스타트업이 연이어 등장했다.

이들의 타깃은 한 집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거비가 높은 도시에서 자주 이사를 하는 젊은 층이다. 페더의 시장조사 결과, 뉴욕 사람들은 평균 1.6년마다 집을 옮긴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사 때마다 사람들은 고민이 많다. 사용하던 가구를 그대로 가져가면 좋겠지만 새집의 크기와 분위기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가져가거나, 팔거나, 버리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가구를 옮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버리는 건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고 아깝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파는 것도 귀찮다. 또 사람의 취향은 바뀌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었던 소파가 어느 순간 싫증 나기도 한다. 큰 돈 들여 산 덩치 큰 가구만큼 애물단지가 없다. ‘소유는 부담스럽고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가구를 바꿔가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가구 구독 스타트업은 이런 사람들의 필요를 파고들었다.

젊은층, 가구 정기 구독 서비스 주목 #부담스런 소유보다 '사용 권한' 산다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바꾸는 공간 #재택근무 증가로 관련 가구 구독 늘어

론칭 후 3개월 동안 등록한 미공의 현재 회원 수는 5000명, 구독 계약은 400건 정도다. 김남석 미공 대표는 “자주 이사를 하는 1인 가구나 30대 초중반 신혼부부들의 호응이 가장 높다”며 “다양한 콘셉트의 제품을 사용해보고 싶은 이들이 선택한다”고 했다. 완전한 가구 구독 모델은 아니지만 ‘현대렌털케어’에서 매트리스와 함께 침대 프레임을 대여해주는 현대리바트 서비스는 올해 3~5월 신규 가입 고객이 지난해 대비 25% 이상 늘었다. 기존 신장률 10%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현대렌털케어에서는 현대리바트의 코펜하겐 침대를 매트리스와 패키지로 렌탈 서비스 하고 있다. 사진 현대렌털케어

현대렌털케어에서는 현대리바트의 코펜하겐 침대를 매트리스와 패키지로 렌탈 서비스 하고 있다. 사진 현대렌털케어

한국은 시작단계지만 해외에서 가구 구독 모델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가구 구독 업체 ‘카사원’은 2019년 무려 7배의 매출 증가를 달성하면서 1600만 달러(19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가구 구독 업체는 코로나 19의 영향도 피해갔다. 재택 근무자들의 오피스 가구 구독이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LA 기반의 가구 구독 업체 ‘퍼니시’는 올해 3월 중순부터 홈 오피스용 가구 주문이 300% 늘었다고 밝혔다.

가구 공룡으로 불리는 이케아도 가구 임대 모델을 테스트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책상·침대·소파 임대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이케아는 가구 대여를 통해 버려지는 가구를 순환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20년까지 전 세계 30개 시장에서 다양한 구독 기반 임대 모델을 실험하고, 가구를 버리기 전까지 가능한 한 많이 재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의류 구독 서비스 업체 ‘렌트 더 런웨이’도 리빙 소품 브랜드 ‘웨스트엘름’과 협업해 쿠션 등 리빙 소품 대여를 시작했다.

이케아 기흥점 쇼룸 내부. 이케아 역시 버려지는 가구를 줄이기 위해 가구 대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케아 기흥점 쇼룸 내부. 이케아 역시 버려지는 가구를 줄이기 위해 가구 대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 소장은 “최근 들어 가구도 패션처럼 빠르게 소비하는 ‘패스트 퍼니처(fast furniture)’ 흐름이 있다”며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서 그때그때 다양한 가구를 소비하려는 욕구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소유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맞춤형으로 사용권을 얻어 경험하는 ‘스트리밍 라이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집‧자동차‧가구 등 전통 경제의 재화로 구독 경제가 빠르게 파고들 것”이라며 “경제적으로는 언뜻 더 손해인 것 같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만족도와 가치를 준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구독 경제에 관심을 갖는 현상을 두고 “누리고 싶은 것은 많은데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 세대가 영리하게 자본을 쪼개서 소유는 못해도 이용은 하자는 심리”라며 “물리적인 소유 대신 사용 ‘권한’을 구매해 큰 돈 들이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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