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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與 상임위장 독식? 조자룡 헌칼 쓰듯 권력 쓰면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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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운이 좋다. 금배지를 떼자마자 재취업에 성공해서다. 6월 초부터 지상파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앙일보·국회미래연구원 공동 기획 #21대 국회에 바란다|이철희 전 의원

지난 3일 서울 신촌에서 만난 이 전 의원은 자신을 “1인 독립 언론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된 지난달 30일 민주당에 탈당계를 냈다. 탈당한 이유가 “편들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오버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언론인’ 이철희는 정치인 이철희보다 인상이 부드러웠지만, 언변은 여전했다. 다만 ‘윤미향 사태’나 ‘금태섭 징계’ 등 현안에는 “노코멘트”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평론가가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신촌의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신촌의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겠다. 한국 정치에서 당론과 국회의원의 양심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정당은 정치의 기본 단위다. 우리 헌법이 정당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정당의 공천을 받고 선출됐다고 하면, 그 사람이 정당의 입장과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마치 자신이 속한 정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소신 있는 정치인인 양 비치는 현실은 잘못됐다.”
당론은 절대적인가.
“당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류와 다른 주장을 치열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꼭 정당 밖으로 표출될 때만 소신 있는 정치인인가. 정당이 소속 국회의원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로봇처럼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다만, 그 안에서 충분한 민주적 토론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집합적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 결정에 동의하지 않아 다른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기율이 없는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양당제가 심화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려고 시도할 거라고 봤지만, 저렇게 거칠게 만드는 시도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가 용인한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현행 정당법으로도 허락해주면 안 되는 거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해 4월 26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현장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아래),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 등과 대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해 4월 26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현장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아래),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 등과 대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 전 의원은 선거법을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올릴 당시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을 맡고 있었다.

예상했는데 왜 안 막았나.
“위성정당이 생길 수 있는 틈을 막으려고 했지만, 법 조항으로 막는 것도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민주당에서도 위성정당을 만들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를 막을 길은 없다’고 했는데도 정의당은 왜 그렇게 낙관적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민주당도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최소한 선거법을 바꾸겠다고 약속하고 선거법 개정을 주도한 정당이라면, 그 약속을 못 지킬 때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선거에서 대승했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선구 기자

선거법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비례대표가 최소한 100석은 돼야 한다.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게 부담이라면 전체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
국민 여론이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인데.
“의원 개개인에 들어가는 지원을 줄이면 된다. 한국은 의원은 안 늘렸지만, 보좌진은 계속 늘려왔다. 기왕 돈 들어갈 거 보좌진 말고 의원을 늘리자. 지금 보좌진이 9명인데, 20명을 줘도 의원의 질이 좋아지진 않는다. 의원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고 견제하게 만들어서 정치가 좋아지게 해야지, 정치가 꼴 보기 싫다면서 숫자만 줄이면 더 안 좋아진다.”
민주당이 ‘일하는 국회’ 드라이브를 건다.
“일하는 국회, 동의한다. 다만, 마치 의회가 정부 일을 대체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거다. 의회는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감독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게 삼권분립에 따른 대통령제 모델의 기본 정신이다.”
‘일하는 국회’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상시국회인데.
“365일 상시국회는 허구다. 회기가 100일이든 200일이든, 그 안에서 내실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지역구 제도를 두고 있는데 연중 국회를 여는 나라가 어딨나. 100건의 법안을 낸 사람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법안 1건을 제대로 만들어서 관철하는 사람이 밥값을 하는 거다.”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신촌의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신촌의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통합당은 ‘일하는 국회’도 좋지만, ‘상생과 협치’로 일하자고 한다.
“상생과 협치는 사기다. 불가능한 얘기라서다. 다수 의석을 가지나 소수 의석을 가지나 똑같이 대접받는다면 왜 선거를 하나. 선거의 의미를 무시하는 거다. 상생과 협치라는 담론이 과도하게 다수결을 제약해선 안 된다.”
다수결은 늘 옳은가.
“누가 다수냐만 갖고 밀어붙이면 그건 ‘다수의 폭정’이다. 숙의와 타협의 과정을 거쳐서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최종 합의가 안 돼서 다수결로 통과시켰다면,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심판할 거다.”
그런 책임정치 차원에서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18석 독식 주장이 나온다.
“자기부정이다. 의석수(민주당 177석, 통합당 103석)를 기준으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에 만들었다. 18대 국회 때 통합민주당이 81석이었는데 상임위원장 가졌잖나. 그런데 지금 와서 여소야대가 아니기 때문에 다 독식해야 한다? 그렇게 권력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쓰면 얼마 못 버틴다. 관행도 법이다.”
통합당이 대안 세력이 되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의원총회에서 ‘불만이 있더라도 시비 걸지 말라’고 한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상당히 불만을 제기할 만한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 아닌가. 시대와의 불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다음 선거는 잊으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것에 연연하면 개혁 못 한다. 전 세계의 큰 정당이 대부분 바닥을 친 때가 있었다. 갑자기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서 그 당을 살린 게 아니다. 당 내부에서 변화를 위한 투쟁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신촌의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신촌의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여당 국회의원에서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좋은 정치를 위한 언론의 역할은.
“정치 양극화도 심각한데, 언론조차도 양극화되면 사회 전체가 양극화된다. 이건 위험하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은 비판이고, 책임 있는 정부·여당을 더 비판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비판이라는 게 차별적이면 안 된다. 호불호에 따라 논조가 왔다 갔다 하면 문제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퇴진과 20, 30대 청년 다수의 국회 입성을 주장했다. “청년들이 가장 힘들다. 수업 듣고, 시험공부하고, 스펙 쌓는 게 일이다. 그래도 취업이 될까 말까다. 청년 문제는 결국 사회경제적 문제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국회에 와서 의제화하고 해법을 제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다. 이번 총선 결과 그의 바람대로 20, 30대 국회의원이 3명(20대)에서 13명(21대)으로 늘었다. 이 전 의원이 이날 인터뷰 중 가장 환한 얼굴로 한 말이다. “그 사람들이 좀 잘하면 좋겠어요, 정말로.”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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