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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다시 피어오를까, 제7광구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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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한·일 자원개발 줄다리기

한·일 간에 자원·외교·경제 줄다리기가 또 한판 벌어지게 됐다. 이번엔 제주도 동남쪽 바다 ‘제7광구’를 놓고서다. 1970~80년대 국민을 산유국의 꿈에 젖게 했던 바로 그 장소다.

외교부, 일본에 공동개발 통보 #2009년 제안 땐 일본 묵묵부답 #2028년 한·일 협정 만료되면 #일본이 개발권 모두 가져갈 수도

구도는 ‘움직이려는 한국과 꼼짝 않으려는 일본’이다. 한국은 약 20년 만에 다시 제7광구 원유·가스 개발에 나섰다. 한국 정부는 올 1월 한국석유공사를 ‘조광권자’로 지정했다. 조광권이란 각종 에너지·광물 자원을 탐사·채굴할 권리다. 그러나 조광권을 얻었다고 제7광구에서 원유·가스 탐사를 바로 시작할 수는 없다. 7광구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함께 해야 하는 ‘한·일 공동개발구역’이어서다.

“일본, 답하지 않고 질질 끌 수도”

1970년대 제7광구는 국민으로 하여금 산유국의 꿈을 꾸게 했다. ‘제7광구’란 대중 가요도 나왔다. 사진은 7광구 옆 5광구에 설치됐던 시추선. 5광구에선 원유·가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중앙포토]

1970년대 제7광구는 국민으로 하여금 산유국의 꿈을 꾸게 했다. ‘제7광구’란 대중 가요도 나왔다. 사진은 7광구 옆 5광구에 설치됐던 시추선. 5광구에선 원유·가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중앙포토]

한국 외교부는 절차에 따라 “석유공사가 조광권을 얻었다”고 올 2월 일본에 통보했다. 사실상 “7광구를 같이 개발할 일본 측 조광권자를 정해 달라”는 요청이다.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일 공동위원회를 열자”고도 했다. 그러고 넉 달. 일본 측은 아직 따끈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한·일 관계 당국 간에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만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등으로 인해 진척이 빠르지는 않다”고도 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최지혁 전문연구원은 “일본이 쉽사리 답하지 않고 질질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2009년에도 한국은 7광구 공동개발을 일본에 요청했으나, 일본이 응답을 회피해 흐지부지됐다. 이런 일본의 태도와 전략 뒤에는 자국의 자원개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제7광구가 주목받은 건 60년대 후반부터다. 68년 미국 해군 해양연구소가 서해와 남해 대륙붕 지역을 탐사했다. 결과는 ‘한국 대륙붕에 석유·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에머리 보고서’였다. 박정희 정부는 바로 개발을 위한 광구 7곳을 설정했다. 이 중에 7광구가 마찰을 일으켰다. 일본에도 가까운 바다여서 일본이 개발권을 주장했다.

한국엔 무기가 있었다. 당시는 ‘육지에서 쭉 이어진 수심 200m 이하 대륙붕은 해당 국가가 각종 관할권을 갖는다’는 게 국제관례였다. 이른바 ‘대륙 연장론’이다. 이에 따르면 7광구는 한국에 권한이 있다. 한국으로부터는 대륙붕이 연결됐지만, 일본은 바다 중간에 골짜기가 있어 단절됐다.

그러나 70년대 한국은 해저 원유·가스를 개발할 돈도 기술도 없었다. 결국 한·일 양국은 7광구에 대해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을 맺었다. 함께 개발하고, 수익도 나눈다는 내용이다. 협정은 78년 발효됐다. 2028년까지 50년간 유효하다.

협정 발효 직후 7광구에선 탐사와 시추가 시작됐다. 한국은 미국 기업, 일본은 자국 업체에 일을 맡겼다. 87년까지 7개 시추공을 뚫었으나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엔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다시 불이 붙은 건 2000년대 들어서였다. 7광구 근처에서 중국이 원유·가스를 찾아낸 게 계기였다. 한국과 일본은 공동으로 지질 조사(탄성파 탐사)를 했다.

제7광구

제7광구

탐사 결과를 놓고 해석이 엇갈렸다. 최소 5곳 정도 가능성 높은 장소가 있다는 데는 한·일 간에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일본은 “경제성이 없다”고 못 박은 뒤 아예 7광구에서 손을 뗐다. 2009년에 한국이 제기한 공동개발 요청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올해 한국이 다시 나섰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당장 7광구 4소구 바로 근처에서 중국이 원유·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정부가 올해 초 석유공사에 2·4소구 조광권을 준 이유 가운데 하나다. 또한 그간 해저 석유·가스 개발 기술이 발달해 이젠 과거보다 경제성이 나아졌다.

한국 정부엔 이런 가능성·경제성보다 더 화급한 사정이 있다. 손 놓고 있다가는 자칫 7광구 자원 대부분을 일본이 가져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제관례와 국제법이 바뀐 게 문제다. 80년대 초반까지는 ‘육지와 대륙붕이 이어진 나라’가 유리했다. 과거 박정희 정부가 7광구에 대해 권리를 주장했던 강력한 근거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중반 들어 단순히 영토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거리를 따지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바다 위에 양국 영토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선(중간선)을 그어 바다를 나누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일본이 7광구 대부분에 대해 자원을 개발·점유할 권한을 갖게 된다.

실제 사례가 있다. 호주와 동티모르 간의 ‘티모르해 협약’이다. 애초 호주와 동티모르는 대륙붕 연장을 기반으로 옛날식 협약을 맺고 티모르해의 유전을 공동 개발했다. 그러나 2018년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 유엔(UN)의 조정에 따라 개발권은 모두 동티모르에 넘어갔다.

7광구를 놓고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기존 협정은 2028년까지 유효하다. 그러나 그 뒤엔 중간선을 기준으로 영역을 재설정할 것이 유력하다. 이러면 개발권은 거의 다 일본 차지다. 이번 한국 측의 공동개발 요청에 일본이 응하지 않고, 공동개발 협정이 만료될 때까지 시간을 끌 것이라고 보는 배경이다.

중국도 7광구 지분 주장 가능성

일본으로서도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시간을 끄는 사이 7광구 인근에서 중국이 계속 원유를 뽑아 올리면 7광구에 있는 원유까지 일부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이른바 ‘빨대 효과’다. 나중에 ‘중간선’을 기준으로 7광구를 가를 때도 중국이 걸림돌이다. 7광구 일부 해역이 중국과 가까워 중국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일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중국과 날 선 대립을 벌이고 있다. 7광구에 중국이 끼어들면 아무래도 껄끄러워진다.

한국이 7광구를 개발하려면 일본이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발표한 ‘6차 해외자원개발(10개년) 기본계획안’에서 “7광구 공동개발을 위한 협의 재개를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과거사와 일본의 수출 규제,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결국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꺼번에 풀어야만 7광구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7광구엔 원유·가스가 얼마나 있을까

제7광구의 원유·가스 매장량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문건이 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2005년에 낸 ‘동북아의 해저 석유(seabed petroleum in northeast Asia)’ 보고서다. 여기엔 7광구를 포함해 동중국해 전체 매장량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동중국해 천연가스 매장량은 175조~210조 세제곱 피트(5~6조㎥)인 것으로 중국 측은 추정하고 있다. 원유 매장량은 1000억 배럴로 예상된다’고 했다.

원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약 40%, 천연가스는 10배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인 탐사·분석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 ‘중국은 이렇게 믿고 있다’는 정도여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7광구 전체 석유·가스 매장량에 대해 체계적인 탐사·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과거 한·일 간에 오간 논의 등을 통해 부분부분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한·일 양국은 1990년대 초반 7광구를 공동 탐사한 뒤 93년 9월 회의를 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국가기록원을 통해 확인한 당시 회의 자료에 따르면, 두 나라는 “어느 정도 개발 가치가 있으나 현재 유가로는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93년 유가는 배럴 당 18~20달러였다. 유가가 배럴 당 40~50달러에 이르면 그때와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

2002~2004년에는 석유공사가 7광구 일부 지역을 물리 탐사한 뒤 “원유 3600만t(2억8000만 배럴)이 묻혀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현재 유가로 계산해 약 110억 달러어치다. 당시 한국은 “채산성 있다”고 했으나, 일본이 “경제성이 없다”며 반대해 개발이 무산됐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