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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일부러 낮춘 건축물에 첨성대를 꽂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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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최근 서울 태평로에 눈에 띄는 조형물 하나가 생겼다. 이 조형물 덕에 덩달아 건물이 회자된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옥상에 자리 잡은 첨성대(사진)의 이야기다. 3일부터 개막한 기획 전시 ‘빛으로 희망을 비추다’를 위해 설치된 작품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첨성대 모양으로 쌓아 올렸다. 밤에 빛난다. 전시 기획 의도는 이렇다.

‘첨성대가 수많은 국난을 이기고 우뚝 선 우리 민족의 긍지를 보여주듯, 자동차의 폐(廢)헤드라이트를 재생시켜 빛을 발산하는 작품 ‘환생’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숨을 쉬며 함께함을 전하고자 기획된 전시입니다.’

약 10m 높이의 튀는 조형물을 이고 있는 꼴이 됐지만,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본디 목표는 스스로 낮춰 숨으려는 것이었다. 숨으려 새로 지은 건물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건축물의 본성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대도시에 지어지는 큰 건물일수록 도시의 상징물, 즉 아이콘이 되길 원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초고층 건물 짓기에 열 올렸던 것도, 부호와 정치인들이 기념비적 건물을 남기길 원했던 이유도 같다. 건물에는 과시적 욕망이 잘 투영된다.

사진 한은화 기자

사진 한은화 기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출발부터 달랐다. 덕수궁 옆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옛 국세청 별관)가 있던 자리였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덕수궁을 정궁으로 삼았던 대한제국의 꿈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이를 철거하고 역사문화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국제설계공모전을 거쳐 터미널7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조경찬+지강일)와 건축사사무소 안(안종환)의 작품이 뽑혔다.

“니(가 설계한) 건물 어딨냐.” 조경찬 소장이 준공 후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이 찾기 힘든 건물은 단층 짜리다. 이마저도 낮다. 경사 지붕인데 평균 높이가 2.1m에 불과하다. 대신 지하로 12.7m가량 파고들었다. 지하에 3개 층 규모의 전시 공간이 있다. 조 소장은 “덕수궁 돌담이 이어지는 것처럼, 뒤편에 있는 성공회 성당의 기단처럼 느껴지도록 건물 층고를 가능한 한 낮췄다”고 전했다. 건물 옥상으로 튀어나온 엘리베이터 박스조차도 유리로 한 까닭이다.

건물은 터의 역사성을 받아들여 스스로 낮추고 희생했다. 그 덕에 1926년 지어진 성공회 성당이 태평로에서 훤히 보이게 됐다.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의 작품으로 지붕에 기와를 얹은 성당이다. 한국 전통 건축과 조화를 이뤄 한국인에게 용기를 주라는 뜻을 담은 건물은 볼 때마다 친근하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잘 안 보이게, 그야말로 잘 지어졌다. 빛나는 첨성대는 잠깐의 전시일 터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과제로 남았다. 둘러보면 준공 세레모니 이후 방치되고 있는 공공건축물이 숱하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