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정부의 ‘대북 전단 금지법’ 발상

중앙일보

입력 2020.06.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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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대변인 격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자 통일부는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전단 살포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관계자도 “대북 삐라(전단)는 백해무익한 행위”라며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 협박에 통일부 “법으로 삐라 금지”
‘표현의 자유’ 위반 피한 탄력 대처 찾아야

남북 관계 개선이 바람직하다곤 해도 주권 국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는 법이다. 대북 전단 살포는 우리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권리다. 남북 대화나 접경 지역 국민의 안전에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정부와 국민의 자율적 결정에 맡길 사안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안을 정부는 북한 2인자가 담화를 낸 지 4시간반 만에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는 행동을 했다. 대북 저자세를 넘어 ‘굴종’이라 비판받아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김여정 부부장의 요구를 들어주면 막혀 있던 남북 관계가 뚫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남측에 바라는 것은 경제 지원, 즉 돈이 핵심이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망을 한 치도 우회하기 힘든 정부가 북한의 그런 요구를 들어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런 마당에 대북 전단 살포 금지 입법을 추진하면 대북 정책의 카드만 잃는 동시에 위헌 논란을 자초하게 될 뿐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남북 접경인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쏘고, 최근엔 남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하는 등 틈만 나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해 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군사합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정부도 항의 한두 마디 찔끔하는 선에서 북한의 합의 위반을 사실상 묵인해 왔다. 그런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원천 봉쇄하겠다면 북한 권력에 대한 지나친 과공(過恭)이란 평가를 받지 않겠는가.

대북 전단은 보수 정부에서도 딜레마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북한은 탈북자 단체가 띄운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 10여 발을 발사했다. 불안이 커지자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전단 살포를 제지하고 탈북 단체를 만나 자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반발한 탈북 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자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것으로, 원칙적으론 제지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상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그런 만큼 정부는 전단 살포를 불가피하게 제한해야 할 상황이라도 경찰집무집행법 등 현행 법규를 통해 자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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