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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특허 있는 줄 몰랐어요" 손해배상 회피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호의 특허로 은퇴준비(27)

누구의 권리도 침범할 의도 없이 성실하게 자기의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기업가가 어느 날 특허권자로부터 경고장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기업가는 이미 특허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어떠한 책임을 지게 될까?

잘못을 추궁받는 경우에 흔히 하는 변명 중 하나가 모르고 그랬다는 것이다. 어떤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를 법률적으로는 ‘선의’라 하고, 알고 있는 상태를 ‘악의’라고 한다. 자신의 ‘선의’를 항변함으로써 도덕적 책임을 벗어날 수는 있지만 법률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 기업가가 특허가 있는 줄 몰랐다면 특허 침해죄로 인한 형사적 처벌은 면하겠지만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다. 민사적 책임이란 특허 침해로 인해 특허권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말한다. 그렇다면 특허 침해자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은 얼마나 될까?

개별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2019년도 특허청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특허침해소송에서 법원이 판결한 손해배상액의 중간값은 약 6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생각보다는 크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특허 침해를 인정하고 당사자가 합의한 배상액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법원이 인정한 손해액이 적다고 안심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최근 특허법은 미국 특허 제도에서와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향후 법원 판결에 의한 손해액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미국 법원에서의 손해배상액 중간값은 65억 7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기업가가 특허가 있는 줄 몰랐다면 특허 침해죄로 인한 형사적 처벌은 면하겠지만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다. 민사적 책임이란 특허 침해로 인해 특허권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말한다. [사진 Pixabay]

기업가가 특허가 있는 줄 몰랐다면 특허 침해죄로 인한 형사적 처벌은 면하겠지만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다. 민사적 책임이란 특허 침해로 인해 특허권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말한다. [사진 Pixabay]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민법에서 규정하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민법 규정에 따라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로 인한 손해 및 침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또는 침해행위가 있는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되어 특허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민법 규정에 따라 특허권자는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원칙적으로 ⅰ)침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 ⅱ)침해자 행위의 위법성, ⅲ)침해로 인한 손해액의 발생, ⅳ)손해의 발생과 침해행위 간의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손해액은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그리고 정신적 손해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택시 기사의 차량을 누군가가 파손하였다면 수리비 상당액이 적극적 손해가 되고, 수리 기간 동안 차량을 운행하지 못함으로 인한 수입 감소분은 소극적 손해가 된다. 차량 파손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이 정신적 손해인데 법원은 통상적으로 정신적 고통은 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통해 회복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특허 침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허권은 무체 재산권이므로 적극적 손해는 인정되지 않기에 특허권자는 소극적 손해를 주장해야 한다. 특허 침해로 인한 특허권자의 이익 감소분이 소극적 손해가 되는 것인데, 문제는 침해 행위와 상당한 인과 관계에 있는 특허권자의 이익 감소분을 엄격하게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특허 침해가 이루어진 기간 동안 특허권자의 이익 감소가 있었다 해도 특허 침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 의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이 일반적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와 같이 특허 침해와 손해 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해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다면 특허권자는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게 된다.

특허권자는 침해자가 특허 침해를 통해 얻은 이익액을 손해액으로 주장할 수 있으며 침해자와 실시권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가정했을 때 인정되는 실시료 상당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다. [사진 Pxhere]

특허권자는 침해자가 특허 침해를 통해 얻은 이익액을 손해액으로 주장할 수 있으며 침해자와 실시권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가정했을 때 인정되는 실시료 상당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다. [사진 Pxhere]

한편, 다행히도 특허법은 이와 같은 특허 침해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손해액의 산정에 대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다. 특허법에는 특허권자가 손해액을 주장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이 규정되어 있다.

첫 번째로 특허권자는 침해자 제품의 판매 수량에 특허권자 제품의 개당 판매 이익액을 곱한 금액을 손해액으로 주장할 수 있다. 시장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침해자가 판매한 수량만큼 특허권자가 판매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침해자 제품의 판매 수량은 특허권자의 생산 가능 수량을 한도로만 인정된다. 특허권자의 생산규모를 초과하는 배상을 인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특허권자는 침해자가 특허 침해를 통해 얻은 이익액을 손해액으로 주장할 수 있다. 특허를 통해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한정되어 있다고 보아 침해자가 얻은 이익만큼 특허권자의 손해가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특허권자는 침해자와 실시권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가정했을 때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실시료 상당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다. 만약 특허권자가 특허만 있을 뿐 사업화를 하고 있지 않다면 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규정에 따른 청구를 할 순 없지만 이와 같은 세 번째 규정을 통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최근 특허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특허권자는 침해자가 고의로 특허를 침해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규정에 따라 산출된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받을 수 있게 된다.

국제특허 맥 대표 변리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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