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거짓말도 뻥튀기도 없는 IR, 투자자 관심 끌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0.06.04 10:00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18)

사업하는 동료들을 만나다 보면, 대화 내용의 으뜸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투자유치 이야기이다. 누구누구는 어느 벤처캐피탈(VC)로부터 80억 투자받았다느니, 우리도 조만간 40억 투자유치 받을 것 같다는 이야기 말이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 비즈니스 모델은, 요즘 유행하는 앱(APP) 기반의 플랫폼이 아니다 보니, 연달아 들려오는 스타트업 동료 창업가들의 대규모 투자유치 소식이 남의 일인 거 마냥 들릴 때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자유치의 가장 큰 벽은, 나 자신 스스로 ‘외부투자’에 있어서 늘 이중적인 태도로 소극적인 자세를 지녔던 것 역시 사실이다. 가끔은 정말 투자를 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지금 실제로 외부 투자금이 크게 필요 없기도 하거니와, 충분히 자생적으로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기에 괜찮다고 여기다가도, 그냥 이렇게 큰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영위하려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투자는 성장을 위한 자본이 필요하고, 함께 비즈니스를 만들어 갈 파트너를 찾을 때 받는 것이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돈이 필요해져 투자자를 찾기 시작하면 우려했던 경영간섭을 피하기 어려운, 자본차익만이 목표인 투자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에 외부투자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투자는 함께 비즈니스를 만들어갈 파트너를 찾을 때 받는 것이다. 단순히 돈이 필요해 투자자를 찾으면 경영간섭을 피하기 어려운, 자본차익만이 목표인 투자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 pixabay]

투자는 함께 비즈니스를 만들어갈 파트너를 찾을 때 받는 것이다. 단순히 돈이 필요해 투자자를 찾으면 경영간섭을 피하기 어려운, 자본차익만이 목표인 투자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 pixabay]

열심히 업에 집중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고, 기회가 오는 대로 충실히 임하자고 나 스스로 결심했다. 그때만 해도 이토록 결정해야 할 순간이 빨리 찾아올지는 몰랐었다. VC로부터 먼저 콜드콜로 IR요청이 들어왔고, 혼란은 다시 시작되었다.

투자를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이대로 진행을 할 경우, 앞으로 구성원을 충원시키기는 분명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점과 산업을 뒤흔들 만큼의 퀀텀 점프도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섰다. 그리고 성장을 위한 신사업을 모색하는 데에도 기회비용이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속도는 더욱 느려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런 점이 투자설명회에 응답해야 할 이유로 간추려졌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줘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테고, 그러다 보면 방향보다는 속도에 집중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냐는 때 이른 고민도 함께 시작된 것도 부정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냥 반가워야 할 투자유치에 있어서 내가 고민을 갖게 하는 진짜 이유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 정작 업에 들어와서 실제로 경험하는 데에서 오는 Gap을 누구보다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하는 ‘당구’ 산업이 요즘 한창 이슈가 되다 보니, 많은 타 업계 대기업에서 우리와 제휴를 희망하고 더 나아가 M&A 제안도 있었지만, 진행 과정에서 이쪽 업의 실상을 보고 속된 말로 학을 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잘 진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큰 그림을 예상하고 접근하던 그들이,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산업으로 평가하고 우리 산업에 대해 평가를 절하하면서 뒤돌아서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직 성장할 여력이 많이 남은 전통적인 산업이기에, 지금 타 산업의 혁신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상당수다. 사실, 나 자신부터도 이업에 들어온 3년 차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이해 불가한 영역들이 많이 상존해 있다. 우리야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도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면서 상생하고 있다지만, 과연 자본주의 일선에 있는 VC들은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앞서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기술로 승부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당구사업은 흥미로운 아이템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도 매우 큰 장점이다. 우리나라가 당구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기술로 승부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당구사업은 흥미로운 아이템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도 매우 큰 장점이다. 우리나라가 당구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밖에서 바라보면 아이러니하고, 왜 저런 결정을 하고 왜 저리 느린 속도로 나아갈까 할 지 모른다. 또 자금이 부족하다면 얼른 투자를 받지 왜 그러나 할 것이다. 그렇게하지 못하는 것은 이쪽 필드에서는 돈만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관심받는 업계이다 보니 많은 벤처캐피탈이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기술로 승부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당구사업은 오히려 흥미로운 아이템일 수도 있다. 사실 당구만큼 설명이 필요 없는 아이템도 드물다. 그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도 매우 큰 장점이다. 우리나라가 당구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IR에 임해보겠다고 회신을 보낸 날부터, 사업계획서를 다시 보는데 쓴웃음만 난다. 그리고 VC들이 듣기 좋은 내용으로 몇 번을 수정했다가, 이렇게 해서 투자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고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투자하기 애매한 구조의 사업 내용만 남아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나 스스로도 가능성이 50% 이하라고 여겨지는 헛된 이야기는 하지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고 뻥튀기도 하지 말고 너무 앞서나가지도 않기로 했지만, 또 반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재미없거나 패기 없는 창업자의 모습으로 보일까 고민도 함께 들었다.

이제껏 공모전, 경진대회에서 내 아이디어를 발표해본 적은 많았어도, 아이디어가 아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업의 성과에 대해 피력한다는 건, 발표라기보다는 평가받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고자 좋은 수식 어구를 덕지덕지 붙이다가도, 나 자신이 납득이 되지 않아 지우기를 반복한다.

우리 산업에서는 꽤 잘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VC들은 당구 산업에만 투자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당구 산업이 커지고 주목받고 있고 등등 자꾸 쓸데없는 군더더기의 말들이 발표 자료에 포함된다. 소중한 경험과 자양분이 될 새로운 경험에 임하면서, 결과가 어찌 되던 간에 훗날에 지금의 나의 이런 혼란스러움을 잊지 않고 기억에 남길 바라본다. 외부 투자를 그래서 받게 되던, 그렇게 되지 않던 사실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만족스러움보다는 혼란스럽기가 계속 지속될 것 같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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