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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K-바이오·헬스가 ‘코로나 뉴딜’에 희망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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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선희 이화여대 의대 교수 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이선희 이화여대 의대 교수 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세상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4차산업 혁명 기반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에 코로나19 유행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성큼 공간이동 시키는 중이다.

성장동력 꼽아놓고도 속도는 더뎌 #이번엔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4차산업 혁명의 총아로 꼽히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가치는 한껏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서 평가받는 K-방역과 K-바이오를 기회 삼아 경제 침체를 돌파하자는데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바이오·헬스를 3대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김대중 정부 이후 미래성장동력으로 꼽혀온 산업정책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속도는 세계적 변화 추세에 비해 답답한 수준이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경제 침체를 돌파해야 하는 절박함을 고려할 때 정책 추진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고위험 계곡을 건너야만 고성과의 언덕을 오를 수 있는 대표적 영역이다. 개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경쟁력의 관건일 수밖에 없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챙겨야 할 핵심 쟁점을 짚어보자.

첫째, 정부의 통합적 리더십을 정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부처에 산재한 바이오·헬스 관련 사업을 통합적으로 연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시도 중인 범부처 사업방식을 진화시키고 정부 내부에서도 최고 위상을 부여해 추진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둘째, 규제와 연구·개발(R&D) 지원을 정책수단 차원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 산업주체인 기업에는 규제 완화가 시급한 유인 방안이 될 것이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공공재라는 의료의 특성 때문에 그동안 국민 보호를 위한 규제의 벽이 높았다. 이제는 국민 보호와 경제적 실리 증대라는 정책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균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관료화의 산물인 절차 규제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부처 간 중복심사 및 심의 기간 단축, 행정절차 간소화 등은 국민 보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산업 활성화를 추구할 수 있기에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유달리 높은 신기술 관련 진입 장벽을 고려할 때 국내 관련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안전성이 입증되고 사회적 혁신 효과가 높은 분야는 미국처럼 간소화한 뒤 일단 진입시키고 추후 근거를 확보해 재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반면 정부 R&D 지원은 기업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보다는 산업 생태계 조성의 마중물로 쓰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실제로 바이오·헬스 산업은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면서도 개방형 혁신 방식들이 작동되기 위해서 산·학·연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다. 그러나 국가 R&D 규모에서 대학이 집행하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라는 통계는 국내 산·학·연 협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대학은 원천기술 개발의 출발선이자 미래 경제활동 인구를 양성하는 교육현장이다. 산업현장과의 수요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교수와 학생들이 산업 활성화 현장에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활동을 촉진하는데 정부 R&D를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향후 5년간 2조원을 바이오·헬스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세부 내용을 보면 대학 현장을 활용하는 방안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학의 지식자원을 개발하고 혁신해 기업과 사회가 활용하도록 경로를 활성화해줘야 한다. 이를 위한 재정 유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R&D 투자의 공익적 효과를 극대화할 뿐 아니라 미래 청년세대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방안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선희 이화여대 의대 교수·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