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출범도 안 한 공수처를 정권의 도구로 여기는 여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든 이유는 공공 부문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외국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자본을 들여올 수 있도록 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도 큰 목적이다. 과거 정부 때 사정(司正)의 중추기관인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부정하고 부패한 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수사 대상 지목은 정치적 중립을 침해 #부당한 간섭, 압력이야말로 직권남용

공수처장을 임명할 때 야당의 동의와 국회 인사청문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한 것도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소신 있게 수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관련법이 “수사처 소속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직무를 수행할 때 외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출범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부의 권력자들이 ‘1호 수사 대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 검사 등을 지목하며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 법치주의의 책임자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최근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재심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사건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마치 큰 완장을 찬 듯한 유치한 발언과 행동을 일삼고 있는 최강욱 의원도 마찬가지다.

공수처가 출범하려면 아직도 많은 과정의 난관을 거쳐야 한다. 먼저 인사청문회 대상에 공수처장을 포함시키도록 국회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 뒤 공수처장을 임명하면 공수처장이 차장과 수사 검사, 수사관들을 뽑는 절차가 이어진다.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올해 말부터나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공수처 수사 대상을 운운하는 것은 이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겨냥해 공갈 협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들린다. 특히 위헌 논란 시비를 무릅써 가며 공수처를 입법·사법·행정부 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추 장관 등은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수사 대상을 특정하는가. 향후 공수처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 압박이고 간섭이 아닌가. 이런 게 바로 직권남용이 아닌가.

공수처법에 따르면 추 장관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과 최강욱 의원 등 국회의원들은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 그런 사람들이 마치 공수처를 정권의 전리품인 것처럼 살아 있는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은 당초 법을 만든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미래를 향한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수처의 수사 감시망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조사 대상을 특정하는 것은 정치적 교만이고 월권행위다. 공수처를 더 이상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