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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법질서 대통령’ 선언, 1968년 닉슨 대선전략 모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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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주 방위군이 장갑차를 배치채 통행금지령을 거부하며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주 방위군이 장갑차를 배치채 통행금지령을 거부하며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라고 적었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남성 사망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 간 통합보다 집토끼 챙기기로 대선에 임하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경쟁자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를 나약하다고 비난하면서 “나약함은 무정부주의자와 약탈자·폭력배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연방군 동원 등 강경 진압 방침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시위를 틈타 등장한 약탈·폭행에 분노하는 백인 보수층 사이에서 철저하게 후자 챙기기로만 가겠다는 신호다.

닉슨, 킹목사 암살 뒤 혼란 상황 #“법질서 회복” 캠페인으로 백인 결집 #트럼프 “침묵하는 다수” 호소작전 #바이든 “트럼트가 전쟁터 만들어”

바이든 후보는 이에 “도널드 트럼프가 이 나라를 해묵은 분노와 새로운 공포로 분열된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해 미국 대선에서 인종 투표전 양상이 본격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법 질서 대통령’을 선언한 데 이어 하루 만에 ‘침묵하는 다수’를 들고나온 건 1968년 대규모 소요 사태 당시 리처드 닉슨 공화당 대선후보의 ‘법 질서(Law and Order)’ 슬로건을 모방한 것이다. 당시 닉슨은 그해 4월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과 6월 로버트 케네디 암살 사건으로 전국 100여 개 도시에서 시위가 계속되자 ‘법 질서’ 선거전으로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대학생 시위대와 불타는 건물 등이 등장하는 TV 대선 광고를 통해 “법 질서 회복” 메시지를 반복했다. 닉슨은 선거 내내 “법을 지키는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는 법 질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로 민주당 허버트 험프리 후보에게 압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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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역시 비슷하다. 미국 내 백인의 인구 비율은 60%지만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73%로 압도적으로 많다. 어차피 유색 인종에선 지지자가 적으니 철저하게 보수 백인층을 결집하겠다는 시도다. 지난달 17∼20일 실시된 폭스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4%다. 그런데 인종별로는 백인 51%, 흑인 15%, 히스패닉 25%로 백인 지지율이 훨씬 더 높다. 나라가 쪼개지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보수 백인 지지층에만 올인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다.

그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에게 계속 밀렸다.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일까지의 여론조사 평균(리얼클리어폴리틱스 집계)은 바이든 48.6% 대 트럼프 42.6%다. 여론조사 숫자에선 밀려도 트럼프 대통령의 승부수는 충성층 결집에 있다. 나라가 쪼개지는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지지층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결집시켜 오는 11월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는 데서 앞서겠다는 전략이다. 토머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정치학 교수는 “지금 당장은 트럼프의 대응에 실망한 일부 중도 유권자가 이탈해 바이든의 지지층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트럼프 지지층보다 결집력이 약한 바이든 지지자의 결집이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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